
[샘문뉴스]
【베스트셀러 詩 초대석 - 23편】
이정록 시인
이정록 시인은 베스트셀러 명품브랜드 샘문시선에서 출간한 8권의 시집 중 5권에 시집이 6년간 네이버 선정 베스트셀러로 선정 되었으며, 도서메카 1번지 교보문고에서도 5권에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선정되어 골든존에 등극하였습니다. <산책로에서 만난 사랑> <내가 꽃을 사랑하는 이유> <양눈박이 울프> <꽃이 바람에게> <바람의 애인 꽃> 총 5권이 모두 4쇄~8쇄까지 완판하는 기록을 세운 시집입니다.
이정록 시인은 40년간 시를 썼는데 시만 써서는 못 먹고 살아서 40년간 사업을 같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쓴 시와 수필과 소설과 칼럼, 평론들이 15.000편이 넘는 시인은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시창작 강의를 하면서 수많은 신인들을 지도하여 시인으로 베출하였습니다.
그리고 20년간 사비를 털어 문학사 등을 하고 있으며, "한용운문학상", "한용운전국시낭송대회", "샘문뉴스 신춘문예", "샘문학상", "한국문학상", "김소엽전국시낭송대회"를 제정하여 문인 및 시낭송 예술인들을 양성하고 미래 동량들을 발굴, 기성문인들 기량을 향상을 시키는 등 한국문단 발전에 기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 시인의 작품 23편을 감상해보겠습니다.
ㅣSMNㅣ
샘문뉴스 보도본부장 김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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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이정록
한 치만 보여도 된다
한 치 후퇴는 두 치 전진이다
보일 만큼만 보이면 된다
그만큼만 가면 된다
소원이다
언제 저 삐딱한 용산 하늘과
여의도 막장구름이
산과 들을 측은한 가슴으로 덮을 수 있는
아량을 가졌던가
기적 같은 도발 따위가 있었던가
오늘도 하늘은 할 말이 막히면
중력의 임계점을 침탈하고
아리송한 윽박질로 서정을 훼손하고
민초의 낭만을 앗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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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들을 신이라 말한다
이정록
이들은 대단한 신들이다
이슬 한 방울 속에 하늘을 모시고
들꽃 홀씨 한 알 속에 우주를 모신다
나라는 존재가 미약할 때는
가녀린 존재로 보였지만 세월이 묵었다
이들이 대단한 존재라는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신들 만이 권능을 가진 줄 알았다
대단한 신들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우주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천국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나는 감히 말한다
들꽃이 우주를 담을 수 있는 시공이다
이슬이 하늘을 모실 수 있는 시공이다
사랑이 우주요 하늘의 자식이다
이들이 곧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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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맹세
이정록
내 것, 니 것이 아니다
긁적이는 글씨가 아니다
낙서 된 종이가 아니다
처음 맘으로 살아야 한다
힘들어도 늘 초심으로 돌려야 한다
맹세라는 것은 목숨을 건 도박이다
남의 맘을 찌르는 비수가 아니다
약속과 결맹한 맹세는
맘속에 긋는 하나의 큰 획이다
맘속에 찍는 하나의 큰 점이다
맘속에 새겨지는 낙인이다
영혼 속에 빛나는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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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꽃
이정록
발정 난 공작들의 애정 행색인가
하안거 천사들의 교교한 날갯짓인가
궁정발레 무희들의 군무인가
촉촉히 젖은 오작교 계단마다 펼쳐 놓은
직녀의 칠색 춤사위다
첫날밤 눈길 안주는 새신랑 앞에서
색동치마 들썩이는 새색시다
합환주 몇 잔에 얼큰한 밤이 운다
격정의 광풍이 불어온다
부부금실로 짠 화관이 파르르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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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사
이정록
그대와 인연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거역할 수 없는 신의 명이라는
엮임이라는 확신이 든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우선은 그대를 만나서 내가 살고 싶어졌다는 것이고
다음은 잠깐 잃어버렸거나
잠재 수납장 속에 처박아버렸던
부드럽고 예쁘고 품격 있는 품사들을
당신이 꺼내서 깨끗하게 씻고
행주로 잘 닦아서
다시 사용하게 한다는 것이다
와우 브라보
와 넘 아름다워요
와 시향이 너무 좋아요
와우 신기해요
와 당신은 천재예요
워매 최고예요
와 당신은 천사예요
와 공주님 예뻐요
오잉 고마워요
어따 미안해요
와 사랑해요
와 당신 밖에 없어요
세상에 이렇게 많은 행복한 랑그들을
사랑의 언어들을 그대가 꺼내줘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대 따뜻한 품에 안기니 학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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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만세
이정록
한참을 가다
아니다 싶을 때
다시 돌아서서 뛰어서
제자리로 가기까지
천 년이 걸릴 지도
만 년이 걸릴 지도 모른다는 것을
저 함성이 하늘을 찌르고서야
대의가 내 심장을 찌르는 순간에서야
그때 그때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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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화夜花
이정록
고요한 풀섶 신묘하다
달빛 촉촉한 물안개 여울목 소리 없이 넘는다
저 멀리 홍등 흔들림 요요하고
술 독아지 누룩 익는 소리
누룩 박粕 터지는 소리
누룩 분칠하는 소리
야화夜花 피어나는 소리
지나는 시객 한삼자락 부여 잡으니
술 맛이 당긴다
거나한 취기에 눈빛 흔들리는 묵객시인
여인의 치마자락 펼쳐 놓고
붓 끝 휘날리니
흑매화 피어 오르고 벌 나비 춤을 추니
입에다 묻고 눈에다 묻고
가슴에 묻으니
격정의 사랑 파르르 요동치고
이 밤 다시는 못 올지도 몰라
이 꿈 다시는 못 꿀지도 몰라
이 꽃 다시는 못 필지도 몰라
달빛에 흩어지는 물안개처럼
저 들판에서 흩어지는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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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장날
이정록
여울목 돌고 돌아 나가 치솟는 물빛에
회오리바람이 들이치니
빨주노초파남보 칠색 물보라가 꿈을 꾸네
추성골 영산강변 따라 담양장날이 열리고
죽물전이 펼쳐지는 날
소년은 징검다리 걸터앉아 수채화를 그리네
굽이치는 실개천 여울목 버들치떼
대바구니 이고 다름질 치는 완동골 처녀들
치맛바람에 오색 꼬리 치니
능수버들은 간드러지고
펄펄 끓는 황금 모래밭
모래찜하던 누나의 여름이야기
솔솔솔 밀어내는 가을바람은
수선화 꽃술 차르르 빗어 내리네
물수세미꽃 춤추는 간아당 거슬러 오르니
은날치떼 물빛을 수놓고
수초밭에서는 물닭이 물꿩이 포란을 하고
우주를 깨고 나온
흰빰검둥오리 새끼들 헤엄을 치네
물빛을 물질하던 황금 햇살 스러지는 소리에
담양장날 죽물전이 파하고
소년의 수채화 속에서 날아간 댓잎이
가을바람 넋살魂撒에 물수제비를 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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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꽃
이정록
절간에서 갑자기 나팔소리가 들린다
지나가던 난봉꾼 벌 나비들이 웅성댄다
악마의 나팔을 불어대는 이 마녀를
노승과 동승이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가
노승이 동승에게 이른다
"아가 저년 입 좀 틀어 막어라잉
저년이 독한 말을 잘 허니께 별호가 독말이여
저년 품에 빠지면 악마도 못 빠져나가지야
숨통을 꽉 쪼이고 찔러서 즉사 시키는 악녀지야"
"제가 그렇게 무서운 마녀를 어떻게 막아유 무서워유
톱니 같은 비수가 사방팔방으로 감시하고 있다가
칩입자가 들어오면 막 사방간데를 찔러대유
난 못해유 스님이 허세유"
"그러니께 그리 죽여갔고 찐을 쪽쪽 빨아 먹는데
저년이 벌 나비 한테는 사죽을 못써야
그것들만 오면 바람이 나갔고 벌렁벌렁
지껏 오장육보까지 다 벌려주지야"
어느덧 한 줄금 폭우가 지나가고
낮달이 해거름을 재촉한다
이 때 어른 벌들에게 밀려 꿀은 못 땄던
어린 벌이 가녀린 날개로 탁발을 사정하자
마녀는 어린 벌이 참하고 매력이 있는지
흰 치마를 들썩거려서 품 안으로 끌어안는다
품에 안긴 어린 녀석이 마녀 꽃술에
날개에 묻혀온 꽃가루를 털어내자
격정의 광풍이 분다
마녀는 앙다문 입술 파르르 떤다
이를 지켜보던 노승이 지팡이로
목어를 툭툭 치며 일갈한다
"저년이 그새 바람이 난게여
젊은 놈이 좋은 것은 알아가지고
아직 해도 안 넘어갔는디
부처님 계시는 절간에서 지랄이여 지랄이"
이를 지켜보던 동승이 잔뜩 호기심에 부풀어서
노승에게 묻는다
"스님 저 마녀가 지랄을 해유?
지랄이 뭐유?"
"니가 알 것 없어야
닥치고 있어야
니가 어른 되면 다 알게되니께
지금은 알 필요 없어야
참, 니는 출가해서 알아서도 안되고
알 필요도 없으니께 신경 쓰지 말어야
알었냐?"
석양이 저물어가고 땅거미가 늘어지자
마녀가 악마에 나팔을 분다
밤의 정령들을 부르는 나팔소리에
댓잎은 쏘삭거리고 범종이 울고
목어가 펄떡거린다
대웅전에 계시는 황동갑옷을 두른 부처가
법당 벽에 모셔진
극락정토 만다라화 속으로
악녀를 온화한 염화미소로 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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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쓰는 반성문
이정록
서툰 사랑이 싫다
돌아서면 핑계거리가 많아
게으른 사랑이 싫다
앉아서 상상거리가 많아
이기적인 사랑이 싫다
혼자만 울거리가 많아
이젠 아픈 사랑이 싫다
너덜해진 가슴이 더 이상 담을 수가 없다
이젠 슬픈 이별이 싫다
상한 마음속에 피눈물이 고이기 때문이다
능숙하거나 익숙지 못해도
게으르거나 이기적이지 않는 사랑
너덜해진 가슴 서로 기워주는 사랑
피눈물을 서로 닦아 주는 사랑
초연하고 맑은 사랑으로 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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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요일의 우체통
이정록
꿈결이 날개가 돋친 듯
자꾸 근질거린다
알고 보니 사연이라는 라임이
할말이 있다고
편지 속으로 쏙 들어오는 것이다
편지를 부치고
눈물을 찍어내고 있을 때
웃비가 지짐거리고
빨간 우체통은 자꾸만 쿵쾅거린다
사연이 많은 것 같다
어떨 땐 따뜻한 숨으로
그녀의 심장소리를 들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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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민주주의
이정록
다수의 국민은 한 번 해보라
집권세력에게 헤게모니를 실어줬다
건전한 다수의 보편적 소망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다수의 독주가 독이 되어서는 안된다
소수의 견제가 약이 되어야 하는
절실이 요구된다
대한민국 여의도가 다수의 바람이 문제인 것일까
소수의 흔들림이 답인 것일까
다수 든 소수 든 휘몰아치는 폭풍우에
너구리 물길에 집 짓듯 장벽을 쌓는다면
민심 이반이 도발할 것이다
하늘이 아는 거짓일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음으로
천심을 거스르며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치를 거스르면 패하고 마는 것이고
이치에 순응하면 성공하는 것이다
땅이 알고 하늘이 아는 진실은
민심을 보듬고 바로 세워서 가야하고
날 선 정의 세워서 가야 하는 것이다
산 높고 골 깊어질까 두렵다
민심을 거슬리며 천심을 저버리면
뿌린 대로 거두는
썩은 과실이 열릴 것이니
부디 숙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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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총량의 법칙
이정록
웃음보따리가 꽃 피듯 터지고
포복절도를 하다 배꼽이 빠지면
한숨 자지러지는 것이다
그럴 때 쯤이면 옆 화단에서
어이없어 환하게 찡그려지는
꽃 앞에 서는 일이
그리 어색한 일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꽃의 비아냥이 그저 인간을 관조하는
자연의 단순한 사유일까?
인간들의 기쁨을 꿰뚫어 보는 것일까!
인간들의 비애를 쓴 웃음이라도 지어
위로하려는 것일까!
어디 웃음 뿐이랴!
인간의 심리에 관한 논문도 쓰고
시도 치고 박제도 할 것이다
세상을 싸맨 보따리가
마냥 웃음 보따리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 속에 녹아 든 아픔이 클 수록
비애가 클 수록
신이 주는 선물이 배가 됨을 꽃은 알 것이다
꽃은 지신을 안아주려는
무수한 인연들의 어깨를 빌리는 것이다
혼자 피어 홀로 웃기도 하지만
가끔은 자신과 인간이 같이 웃기도 하는 것이
신명나는 일임을 알 것이다
모두가 함께 웃는 세상임을
깊이 알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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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하세요
- 나르시시즘
이정록
뭐 별거 있나요
미움도 용서도 사랑도 진심으로 품어요
벽장속에 그대가 보일 거예요
고독한 영혼을 안아주세요
-사랑하세요
-대화하세요
소중한 선물을 얻을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별 하나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꿈 하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통 하나
바로 그대예요
뭐 별수 있나요
원망도 증오도 아픔도 강물에 흘려요
어항속에 당신이 보일 거예요
가련한 영혼을 안아주세요
-사랑하세요
-구해내세요
소중한 행복을 얻을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 하나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시詩 하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연 하나
바로 당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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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로스 폰
이정록
호기심 어린 신세계는 미궁이 아니다
자작나무 가지만한 눈발이 날리는 광야에서
야생마들이 지치는 초원에서
채찍을 휘두르는 목동은
더이상 미지에서 꿈을 꾸는 존재가 아니다
이제는 방황을 끝내야 한다
하늘을 가로질러 신세계를 찾아나서는
양치기는 천사의 카톡 소리를 들으며
은하를 순회하는 별무리 속에서
오늘도 또 채찍을 휘두르며
양 치듯 별들을 치며 별꽃을 터트린다
그의 날개는 늘 털갈이를 하는지
겨드랑이가 늘 가렵다
초원을 누비는 질주보다는
꿈속을 헤매는 미지보다는
빛들이 찬란한 신세계를 찾아나서는
끝없는 날갯짓이 추락하지 않는
길이다 여긴다
추락하기 전에 꾸어야 하는 꿈
추락하기전에 달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댓글
카톡은 목동의 사명이고 운명이다
추락할 줄 모르는 카톡이 터진다
카톡, 카톡, 카카카 카톡,
숨 넘어가게 터지는 카톡 소리 퍼다가
양치기는 별꽃을 터트린다
꿈같은 동경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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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이정록
비워버린 심연속에서
정지된 그 무엇들이 한 곳으로 꽂힐 때
몰입된 무아無我는
밤길 이슬처럼 어디론가
그 무엇을 찾아 길을 떠나고
고요 속 생명의 울림들도
치열하게 길을 찾는다
표표히 흐르는 그리움은
일렁이는 부초의 흐느낌으로 다가오고
낮게 내려앉은 고요는
새 소리에 묻히기 전
어둠 가르고 핏빛 울음을 토한다
비우고 또 비워 가벼이 한 끝이 없는 길
낮은 겸손이 굴할 수 없는
순리의 순응으로
진실한 사랑의 채움으로 도도히 흐르다
무아 속으로 스미는 넌,
별들이 꿈꾸는 태초의 밭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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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실바위취
이정록
암반 정수리에 둥지를 틀고
제법 수심이 깊은 계곡으로 흐르는
저 맑은 물과 엮이지 않으면
내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살짝 들이민 촉수가 부르트지 않으면
자식들 먹여 살리지 못할 것이다
어렵사리 찾아낸 가느다란 바위틈에
촉수를 박고 비를 맞으면 촉수가 부르터서
태초의 바위가 벌어진다
그 틈을 이용해 잽싸게 뿌리를 내린다
또 바위에 기생하는 파릇한 이끼에 사지를
감아 틀어쥐고 촉수를 뻗치고
저 늙다리 자작나무에 취약한 사타구니에
파고 들어가 액즙을 자양분으로
내 새끼들을 칠 것이다
한가로운 날이면 바위에 걸터앉아
두 눈과 두 귀를 열고
내 저변에 애물단지들이 누구고
애잔한 존재들이 누군지 스캔하고 수신할 것이다
이 모두가 내가 먹고 살고
자식새끼들 먹여 살리기 위한
이념적 전투적 상투적 수단이다
청아하게 지저귀는 산새 소리는
그래도 고와 들어줄 만 하니
벗할 것이로되
태초의 기운이 서린 바위 원소에서
고요히 상승하는 염력에 여유를 빌어
마음을 열고 들어 볼 것이다
내 촉수가 부르틀 때
땟국물 우려낸 물소리가 내 편이라 좋고
산새 소리가 내 고행이 우러난 혼 소리 같아 좋다
내 벗이라 좋아 어우러지니 콜라보 앙상블이라 좋다
진한 감동과 엮이니 꽃대 떨려서 좋다
내 망울이 툭 터지니 사랑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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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이정록
소매 바깥으로 내민 손이
예전에 펜대를 잡은 듯 가지런하니
두 손을 모아 내민 손이 세월이 묵어 보이니
쾌나 노출이 길어 보이는 노숙이었을 것이다
구걸을 위해 내밀어 보이는 맨손이
부패한 세상에 오래 노출되어서인지
땟국물이 흐른다
더께 낀 맨손이 행인들이 동전을 얹어주자
이미 숙련된 사유인듯 타고난 사유인듯
코브라 먹이를 잡아 채듯이
지폐는 주머니로
동전은 깡통으로 분리 소화된다
저렇게 잽싼 속도로 시간도 공간도
생각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살을 섞고 헤어지는 것도
저렇게 잽싸게 분리했을 것이다
늘 맨손이었을 것이다
이별 하고 길을 잃은 기러기가
먼 산을 바라보다 헛디딘 슬픔을
품속에 묻고 혹독한 삭풍을 견디었듯이
맨손을 소매속에 묻고
노숙의 비애를 견디었으리라
밤새도록 훌쩍이던 삼양라면 박스집이
출근하는 발자국 소리에 자명으로 울릴 때
익숙한 맨손으로 인심을 호소하러
길목을 지키려 나섰을 것이다
낮달이 하루를 살아내고 사선을 넘어가면
하루를 거둬들인 맨손이
꼬랑내 풍기는 박스집으로 돌아와서
빵봉지 던지면 서럽게 주린 것들이
포만의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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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꽃을 사랑하는 이유
이정록
그대가 만개하기까지 망울이 처연하긴 했어도
서러움이 배어 있을 줄은 몰랐고
이슬 젖은 햇살이 그려낸 풍경이 고와
눈이 시리긴 했어도
내 심상心想이 흔들릴 줄은 몰랐다
바람이 싹을 키운 나래울
그대 꿈이 한 송이씩 날아 오를 때마다
내 생령生靈이 숨을 쉬고
그대 향 배인 솔향에 긴 여운이 날 감싸 안아
지친 몸과 마음에 응어리 청산낙수되어
그대 향한 물보라가 친다
당산나무가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바람의 신을 마중하는 것이고
내가 이 화원에 늘 서성이는 것은
서럽게 오는 그대,
간절히 기다리기 위함이니
그대여 그대여
아련나래 피어나소서
그대여 그대여
아련나래 피어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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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꽃
이정록
그녀는 하늘에게 늘 묻는다
내 투명한 가슴 속에 우주가 들어있는데
모실 수 있느냐고
그녀는 또 바람에게 늘 묻는다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몸을 허락할 수 있느냐고
그녀는 아침에 찬연한 햇살이 비추자
양 볼이 붉어지며 묻는다
그대에게 내 몸을 허락해도 되느냐고
그녀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그녀는 그저 하늘과 바람과 햇살에
교합으로 피어난
더러운 창녀라고도 했고
술법을 부리는 마녀라고도 했다
그녀는 냉혹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햇살 앞에서 만은
발가벗은 알몸으로
정적인 눈물을 흘리며
고혹한 춤을 추는 무녀이기도 했다
바람과 구름과 달과 별이
짝사랑 하거나 유혹을 하였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몸을 허락한 건
햇살 뿐이었다
처녀성을 허락한 것도
햇살을 틀어쥐고 속박한 것도
햇살의 마음을 운용한 것도
평생을 통틀어 그녀가 산란한 후예들은
아라크네처럼 촘촘한 연민의 포승줄에 포획되어
저항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몸을 허락하거나
그녀의 몸을 탐닉하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무상한 그녀를
허무하게 추억할 뿐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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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성자, 홍시
이정록
홍시는 완전하게 성자로서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버린다
까치에게 제 핏덩이 나눠주고
사람에게 제 속살을 아낌없이 주어
살신성인에 이르고
이름하여 나눔의 성자로 영원히 산다
홍시는 홍시로서 만 존재하지 않는다
제 익은 몸뚱이 바람에 맡기고
까치와 사람에게 달콤한 영혼을 맡긴다
따가운 볕과 바람과 뇌우를 탱글한 알몸으로 섭렵하여
자연의 섭리와 권능의 순응하는
저 성자의 충만한 성전의식
성전에 차려지는 저 달달한 희생
홍시는 살신성인으로 존재하기 위해
자신의 몸뚱이를 버려 성현에 이르고
죽어서 다시 살아 신선에 이른다
시공을 초월하는 피안을 위해
기꺼이 제 핏덩이와 속살을 나누어 주는
존재의 완성으로
감나무에 피륙은 버려 두고
뱃속에 달달한 포만으로 누워있는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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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창
이정록
아름다운 곳이다
빛이 마법처럼 변하는 곳이다
꼬마 구들장 지고 코풍선 불며 옹아리 하는 곳이다
한지 먹인 틈으로 슬쩍 문지방 넘던 햇살이
이리도 이쁠 수가 없다
오묘한 곳이다
한지 화단에서 매화 난초 국화 죽화가 피고 지고
바람과 운해가 문살 타고 흐르고
문풍지 구멍으로
사계四季가 순리로 돌아가니
신묘한 풍경이다
그리운 곳이다
어릴 적 꼬마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어디서 무슨 꿈을 꾸는지
추억의 활동사진 거꾸로 잡아 돌리니
잔상이 줄줄이 몰려온다
설화가 핀 곳이다
마당과 울타리엔 홍매 황매 백매가
설풍雪風을 틀어쥐고 설화雪花을 피우고
울타리 구멍으로 어린 소녀가 나오고
깨복쟁이 소년과 만나서 설화說話를 피운다
허기를 채우는 곳이다
소년이 새벽녘 부석에 풍로를 돌려
왕겨불 지피니
가마솥 밥물이 끓어오르고
누나는 끓어오르는 시래기 된장국 간을 보고
어머니 반찬을 요리 허시니
뒤안 참새들이 정재에 들어와 요란스런 아침밥상을 차린다
꿈을 꾸는 곳이다
대숲 길 오르니 달빛 가득허고
대밭에서 들리는
아버지 참빗 낙죽烙竹치는 소리에
죽순 씹던 봉황이 날아 오르자
벽오동 거문고 타는 소리 그윽허다
연못 달빛 부르는 곳이다
황금빛 달물 연잎 이슬로 내리고
이슬 속 별빛 합궁하니
은하를 산란헌다
은빛 가득한 봉창속은
꼬마의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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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이정록
세상의 입들은
세상은 우연히 만나서 필연이 된다고
우연의 법칙이 계속된다고
우연과 필연의 함수관계는 계속된다고
설왕설래 구설口說이다
이런 설득력 떨어지는 구설은
돌팔매 맞을 돌팔이들 말놀이일 뿐이다
세상 천지에 우연은 없다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도 사실은
오랫동안 준비된 기적이다
다만 우리들이 인지를 못하는 것은
신처럼 기적을 읽고 쓰는 권능이
인간한테는 없는 것일 뿐
늘 만나기 위해 준비하라
갈고 닦고 섭렵하라
배려하고 용서하라
위로하고 치유하라
필연코 귀인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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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N
샘문뉴스 보도본부장 김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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