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지봉가훈■ - 이정록 시인

전주이씨지봉가훈 全州李氏芝峰家訓 - 샘터 이정록 교수가 이번에 대물림 받은 집안 가보를 자신의 서재, <샘터산방>에 전시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수광 할아버지로 부터 대물림 된 것인데, 바로 전주이씨지봉가훈 全州李氏芝峰家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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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기자
기사입력 2021-02-08 [05:46]

  © 김성기

 

   SAEM NEWS

 

샘터 이정록 시인이 이번에 대물림 받은 집안 가보를 자신의 서재, <샘터산방>에

전시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수광 할아버지로 부터 대물림 된 것인데, 바로 <전주이씨지봉가훈 全州李氏芝峰家>이다.

 

이정록 시인이 지봉가훈을 공개하는 이유는 집안 조상을 떠나서

이 가훈은 모든 후세들이 교훈으로 삼아야 될 선조의 당부라는 것이다.

가풍이 무너지고 교육이 무너지고 예의범절이 무너지고 시대정신과 보편적 가치가 무너진,

이 혼탁한 시대에, 우환발 역병으로 상식이 무너진 시대에, 두려움에 떨고,

정체성을 잃어가는 이 시대 젊은이들을 위해 발표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정록 시인은 본은 <전주이씨>, 파는 <효령대군>, 자는 <정원>, 필명은 <샘터>,

아호는 <지율, 승목, 제백, 수인> 이며 태종대왕_원경왕후로 부터 21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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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李氏芝峰家訓  

전주이씨지봉가훈

 

             역사칼럼/ 이정록

 

 

若讀書而不踐履 

약독서이불천리

 

만일 책 내용을 독해 후 

이를 실천하지 않으면 

 

却於身心上了無 

각어신심상료무   

 

도리어 몸과 마음에

좋을 것이 없을 것이라 

 

于涉則雖讀盡 

우섭칙수독진

 

어느 수준에 이를 때 까지 

독서에 정성을 다하여라  

 

聖賢讀顧何益哉 

성현독고하익재 

 

성현들의 풀이를 돌아 보니 

어찌 유익하지 않겠는가?  

 

行而不實不如不行 

행이부실불여불행    

 

공부해도 결실이 없으면  

행하지 않는건 만 못하다네

 

於芝峯類說 

어지봉유설  

 

지봉유설에 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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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지봉 가훈]

 

만일 독서하고 난 후 도리어 몸과 마음이 실천 하지않고 

 

성현의 글을 읽고 

자신을 돌아보아 진보가 없다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하여 공부하여 깨달음이 없으면 

행하지 아니함 만 못하리라

 

지봉유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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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說 주설]

 

而,於(어조사)        

若(만약)  

踐履(실천하다)      

却(도리어) 

了無(적을 것이다, 없을 것이다) 

于涉(건너다,  이르다) 

則(법칙, 모범, 어느 수준) 

盡(정성을 다하다) 

讀(읽다, 해독하다, 풀이하다) 顧(돌아보다, 반성하다) 

行(행하다, 즉 공부하다) 

不如(∼만 못함) 

不行(행하지 않는다) 

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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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과 지봉유설 평가 의의 1]

 

지봉유설은 당대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총합된 문화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초반의 저술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다양한 세계의 정보는 저자 자신의 세 차례에 걸친 명나라 사행경험으로 획득한 것이었다. 명나라에서의 사신 활동을 통해 자신이 만난 동남아 지역의 사신들과 서양인 선교사들과의 만남을 갖고 이들 나라의 문물을 보고나서 객관적으로 이해하며,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자신이 살고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비추어보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점은 고유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주체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세계 문화를 수용하는 데에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점이다. 조선 문화백과사전의 효시를 이루는 저술로서 지봉유설은 당시 지식인들이 자신들이 살던 시대의 과제를 인식하고 국부의 증진 및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학문적 모색을 시도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이다. 

 

이수광의 학풍에서 특징적으로 지적되는, 성리학 외의 다양한 학문을 거부감이나 선입견 없이 두루 탐구하는 박학풍과 외국에 대한 그의 개방적인 인식은 그들 학문을 국가 발전이나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실현시키는 데에 목표가 있었고, 후대 북학파를 비롯한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지봉유설》이후 저술된 이익의 《성호사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등의 저술에서 보이는 백과사전적 학풍은 바로《지봉유설》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수광 이후 실학이 지향한 실용적, 개방적 학풍도 《지봉유설》이 제공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제시대인 1930년대에 이르면 이수광은 국학자들에 의해 실학의 선구자로 공식화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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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광과 지봉유설 평가 의의 2]

 

1614년(광해군 6) 이수광(李睟光)이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 

서지적 사항 20권 10책. 목판본, 

주로 고서와 고문에서 뽑은 기사일문집(奇事逸聞集)이다. 

그가 죽은 뒤에 그의 아들 이성구(聖求)와 이민구(敏求)에 의하여 1634년(인조 12)에 출간되었다.

이것을 숭정본(崇禎本)이라 한다.

 

≪지봉유설≫의 권두에 김현성(金玄成)의 제문과 이수광의 자서가 있다. 권말에 이식(李植)의

발문이 있다. 이수광은 자서에서 “우리 나라가 예의의 나라로서 중국에 알려지고, 박학하고

아존(雅尊)한 선비가 뒤를 이어 나왔건만 전기(傳記)가 없음이 많고, 문헌에 찾을 만한 것이 적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는가…

 

       (중략)

 

오직 한 두 가지씩을 대강 기록하여 잊지 않도록 대비하려는 것이 진실로 나의 뜻이다.”라고

저술 동기를 밝히고 있다.

 

≪지봉유설≫은 총 3,435조목을 25부문 182항목으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출처를 밝혔다.

그러나 간혹 빠진 것은 망의(忘意)에 의한 것이다. 인용한 서적은 육경(六經)을 비롯하여 근세 소설과

여러 문집에 이르기까지 348가(家)의 글을 참고하였다. 기록한 사람의 성명은 상고(上古)에서

본조(本朝)까지 2,265명이다. 별권에 기록하였다. 

그 중에 간혹 성(姓)만을 적은 것은 저자 이수광이 의도적으로 한 듯하다.

 

≪지봉유설≫은 

권1 - 천문·시령(時令)·재이(災異), 

권2 - 지리·제국(諸國), 

권3 - 군도(君道)·병정, 

권4 - 관직, 

권5∼7 - 유도(儒道)·경서·문자, 권8∼14 - 문장, 

권15 - 인물·성행(性行)·신형(身形), 권16 - 어언(語言), 

권17 - 인사·잡사, 

권18 - 기예(技藝)·외도(外道), 

권19 - 궁실(宮室)·복용(服用)·식물, 권20 - 훼목(卉木)·금충(禽蟲), 

이렇게 25부문으로 분류되어 있다.

 

≪지봉유설≫에서 가장 두드러진 내용은 서구 문명을 소개한 것이다. 서양 문물에 대한 견문과

새로운 문화에 대한 이수광의 관심이 나타나 있다. 이는 조선 중기 실학의 선구자로서 이수광의

면모를 나타내 준다. 

이수광은 ≪천주실의天主實義≫ 2권을 소개하면서 천주교의 교리와 교황에 관하여도 기술하고 있다.

 

≪지봉유설≫을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비교언어학적인 시도와 어원의 해석, 어휘의 수집,

언어원리의 지적(指摘), 한글 자형의 범자모방설(梵字模倣說) 등의 내용들이 있다.

 

≪지봉유설≫ 권8에서 14까지의 문장부(文章部)에 문·문체·문평(文評)·고문·사부·동문(東文)·문예·시·시법· 시평·어제시(御製詩)·고악부(古樂府)·고시(古詩)·당시(唐詩)·오대시(五代詩)·송시(宋詩)·원시(元詩)·명시(明詩)·동시(東詩)·방류시(旁流詩)·규수시 (閨秀詩)·창첩시(倡妾詩)·가사(歌詞) ·여정(麗情)·애사(哀詞)·창화(唱和)· 대구(對句)·시화(詩禍)·시참(詩讖)· 시예(詩藝)에 대한 그의 다양한 비평 문학적 견해들이 피력되어 있다.

 

이수광이 활동하였던 시대는 실학정신이 잠동(潛動)하고 있었던 때이다. 그는 ≪지봉유설≫을 통하여

실용·실리추구의 정신과 실증정신· 민본정신 등 무실(務實)의 정신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고증적이고 실용적인 그의 학문태도는 공리공론(空理空論)만을 일삼던 당시의 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 뒤에 이 책과 같은 체재가 이익(李瀷)의 ≪성호사설≫, 홍만종(洪萬宗)의 ≪순오지旬五志≫,

이의풍(李義風)의 ≪고금석림古今釋林≫, 정동유(鄭東愈)의 ≪주영편晝永編≫, 유희(柳僖)의

≪물명고物名考≫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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