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문학상 최우수상■ - 민병재 소설가

[샘문뉴스]= 제9회 샘터문학상 소설부문, 최우수상에 민병재 소설가에 "추억은 안갯속에서"가 영광의 수상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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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기자
기사입력 2021-04-01 [05:24]

  © 김성기

 

 

          [샘문뉴스]

 

제9회 샘터문학상 소설부문, 최우수상에  민병재 소설가에

"추억은 안갯속에서"가 영광의 수상을 안았다

 

<소설>


추억은 안갯속에서

 

                    만병재

 

2004년 8월 1일, 일요일, 수아는 긴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 사랑하는 남편 피터와 끝이 없는 넓은 들판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수아는 피터의 50세 생일에 입었던 빨간 꽃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고 피터는 그 어느 때와 같이 정장을 하고 있었다.

 

들판에는 아름다운 가지각색의 들꽃이 피어있었고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실개천에는 수없이 많은 예쁜 새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하늘에는 찬란한 무지개가 눈부시게 걸려있었다. 피터는 수아가 좋아하는 들꽃을 한 아름 꺾어 주면서 이젠 쥬리가 기다리고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수아는 피터도 같이 집으로 가자고 했으나 피터가 별안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수아가 오랫동안 들판을 헤매며 피터를 찾다가 잠이 깨었다.
지난해 피터가 사망한 후로 수아는 가끔 피터의 꿈을 꾸었지만 이 꿈은 너무나 사실같이 생생했다.

 

수아는 꽤 오랫동안 잠을 잤던 것 같았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쥬리야. 쥬리야."
수아는 딸 쥬리를 부르려는데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수아는 여기가 수아의 침실도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수아는 왠지 팔다리도 머리도 움직일 수가 없다. 수아의 가슴 위에는 중심정맥 카테터(Zentraler Venenkatheter)에 링거가 꼽혀있고 수아는 꽃무늬의 환자 가운을 입고 있었다.
수아는 자기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음을 깨달았다.
수아의 머리 위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똑똑 박자를 맞추어 심장의 기능을 지키고 있었다.
중환자실인 것도 분명하다.
오른쪽의 하얀 커튼 뒤에서는 고통스럽게 끙끙 앓는 다른 환자의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수아는 왜 자기가 이곳에 누워있는지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민수아 여사님 제 말이 들리시나요?"
흰 가운을 입은 사샤 마이어 박사(Dr. Sascha Maier)라는 명찰을 달은 키가 크고 젊은 의사가 수아에게 묻는다.
수아는 "네 들립니다."라고 대답을 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수아는 눈을 크게 뜨고 있지만 움직일 수도 말도 할 수가 없다.

 

"리거(Rieger) 간호사, 민수아 환자가 호흡은 자력으로 하고 있고 눈을 뜨고 있지만 아직도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반응이 없어요. 식물인간(Wachcoma)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거의 세 달 동안 이렇게 반응이 없으니 이젠 희망이 적어요. 가족이 오면 나에게 알려주세요. 가족과 상의해서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는 일단은 중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괜히 환자의 수명만 연장하여 고생시킬 필요는 없지요."
닥터 마이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박사님 그렇게 하지요." 금발 머리와 파란 눈의 샌디 리거(Sandy Rieger) 간호사가 대답을 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마이어 박사는 나보고 식물인간이라고 한다. 나는 이렇게 살아있는데."
"아녜요. 마이어 박사님, 난 살아있어요. 당신 말도 똑똑히 들려요."
수아는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가 않는다. 수아는 모든 것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있는데 그들은 수아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줄 안다.

 

의사의 말로는 수아가 거의 세 달 동안을 이렇게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었다고 했다. 수아는 여기가 무슨 병원인지도, 자기가 어쩌다가 이 병원으로 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쥬리야 쥬리야"
"쥬리는 도대체 어데 있단 말이야."
수아는 자기 딸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또 하루가 지났나 보다.
"민 여사님, 잘 주무셨어요."
리거 간호사가 세수 물과 수건을 가지고 수아의 환자방으로 들어온다. 리거 간호사가 젖은 수건으로 세수를 시켜 주고 머리를 빗어주고 양치질도 시켜준다. 새로운 꽃무늬의 환자 가운도 입혀준다.
"민 여사님, 기저귀도 갈아드릴게요."
수아는 자기가 기저귀를 차고 있는 것도 몰랐다. 수아는 너무도 민망스러웠다. 그리고 리거 간호사가 정성껏 자기를 위하여 하는 모든 일들이 고마웠다.

 

한국 병원에서는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수아는 어머니가 허리를 다쳐서 입원을 했을 때 동생들과 교대를 하면서 병간호를 하던 생각을 했다. 다행히도 독일은 간호사가 치료도 간호도 모두를 맡아서 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간호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직장생활을 하는 자녀들에게 부담이 없으며 환자들도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하루에 두 번의 면회 시간 외에는 의사와 간호사의 허락이 없이는 환자를 방문하기도 힘들다.
수아는 남의 도움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식물인간임을 이제야 절실히 느꼈다.

 

리거 간호사가 새로운 링거를 가슴에 있는 중심정맥 카테터(Zentraler Venenkatheter)에 꼽고 하얀 죽이 담긴 병을 음식을 제공하는 위장 튜브(PEG- Sonde) 줄에 연결하고 나갔다. 링거병에는 종합 비타민(Vitamin Complex)이라는 에티케트가 붙어있다. 수아는 이젠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싶고 딸기쨈이 듬뿍 발린 빵도 먹고 싶었다.

 

수아는 머리는 움직일 수 없어도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휘둘러 보려고 애썼다.
벽에는 네덜란드의 화가 핀센트 판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의 해바라기 그림과 십자가만이 걸려있다. 시계도 달력도 걸려있지 않다. 몇 시가 되었는지도 며칠인지도 모른다. 창밖에는 진초록의 미루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살랑거리는 것을 보니 여름인가 보다. 식물인간은 시계도 달력도 보지 못하는 줄로 아나보다. 수아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자신이 너무나 슬펐다.

 

드디어 기다리던 수아의 딸 쥬리가 왔다. 수아가 좋아하는 여름 수국 꽃다발을 가지고 왔다. 수아는 수국이 핀 것을 보니 여름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엄마 잘 잤어?"
"엄마가 좋아하는 꽃이야.
우리 정원에 엄마가 심은 꽃이야."
"그래 쥬리야 꽃이 아름답구나."라고 수아는 답을 했지만 쥬리는 듣지 못한다. 쥬리의 얼굴이 아주 수척해 보인다. 밥이나 제대로 챙겨 먹는지 걱정이다.

 

쥬리가 라디오 리코더를 가지고 왔다.
수아가 좋아하는 영국의 록 그룹의 핑크 플로이드(Pink Floid)와 아이랜드 그룹의 웨스트라이프(Westlife) 음악도 가지고 왔다. 수아와 피터의 애곡들이다.
"엄마, 엄마 아빠가 좋아하던 음악이야.
이 음악 듣고 제발 빨리 깨어 나."
수아의 사랑하는 딸 쥬리의 두 뺨에는 눈물이 흐른다. 쥬리가 물수건으로
땀에 젖은 수아 얼굴을 닦아준다.

 

닥터 마이어가 수아의 환자방으로 들어왔다. 수아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닥터 마이어가 쥬리에게 무슨 말을 할지 수아는 잘 알고 있었다.

 

"따님이 오셨군요?"
"네 마이어 박사님, 수고가 많으세요."
"따님께 여쭈어 보려고요. 어머님께서 벌써 세 달째 코마(Coma)에서 깨어나시지 않는 상태라서 죄송하지만 이제는 가망이 없어요."
"그래서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는 환자에게 못할 일이에요. 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닥터 마이어가 심각한 표정으로 쥬리에게 물었다.
"마이어 박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절대로 안돼요. 제발 최선을 다하셔서 제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쥬리가 애원을 하며 울기 시작한다.
"심장마비 후 너무 늦게 발견을 해서 대뇌(Großhirn)가 산소부족으로 기능을 잃었어요. 네, 그럼 더 지켜보도록 하지요."
의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쥬리야, 나는 살아있다. 다만 움직일 수도 없고 말도 할 수가 없을 뿐이야. 하지만 나는 들을 수도 볼 수도 있어." "나는 곧 일어나게 될 거야.
걱정 마 쥬리야."
수아는 쥬리에게 말하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알아보지? 내 말도 들리지? 그렇지 엄마." "나는 엄마가 꼭 깨어날 것이라고 믿어 엄마."
"꼭 깨어날 거지 엄마!"
쥬리가 수아에게 애원을 하며 울고 있다.
"쥬리야 걱정 마, 내가 곧 일어날게."
수아도 속으로 쥬리에게 말했다.

 

쥬리가 수아의 침대 옆에서 수아의 손을 잡고 같이 핑크 풀로이드 구릅의 '당신이 여기 있으면 좋겠어요
(Wish You Were Here)' 음악을 듣다가 저녁해가 기울 무렵에 돌아갔다.

 

수아는 갑자기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다. 혹시 수아가 몇 달 동안을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쥬리가 수아의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멈추라고 하지나 않을까? 만약에 수아가 죽음을 당하게 된다면 쥬리는 이제 32세이지만 아직도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다. 혈육이라고는 수아뿐인데 어떻게 그 아이가 혼자 살 수가 있을까?
수아가 죽은 후에는 쥬리가 수아의 책상 서랍에서 수아가 쥬리에게 남긴 유서를 꺼내서 읽을 것이다. 수아가 생전에 말하지 못한 그 비밀! 지금까지 피터 피셔(Peter Fischer)가 친아빠인 줄로 알고 자라온 쥬리가 자기의 친아빠가 누구라는 것을 안다면 쥬리의 충격이 클 것이다.
지금까지 피터가 쥬리의 생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피터와 그리고 수아의 친구 미자뿐이었다.

 

쥬리는 친아빠 김민수를 닮아서 키도 컸고 큰 눈에 오뚝한 코에 서양적인 아름다운 미모였다. 피터도 갈색 머리에 갈색 눈으로 별로 유럽인 티가 나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쥬리가 피터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피터는 물론이고 수아 역시 쥬리를 피터의 친딸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피터가 1년 전에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후 쥬리와 수아는 오랫동안 우울증에 쌓여 있었다. 피터는 늘 딸과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자신을 헌신하면서 노력을 했다. 피터는 부모의 얼굴조차 모르는 고아였고 조부모 밑에서 자라서 피터의 소원은 결혼해서 자기의 가족을 갖는 것이었다.

 

수아의 머릿속에는 별안간 모든 기억들이 생생하다.
1972년 7월 6일, 목요일,
그날은 아침부터 유난히도 더웠다. 수아가 2주일의 출산일을 앞두고 좁은 병원 기숙사 방에서 더위를 피하여 만삭의 몸으로 병원 인근의 공원 나무 그늘에서 산책할 때 갑자기 산통이 시작되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던 피터 피셔가 수아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수아의 만삭의 배를 본 그는 수아에게 산통이 왔음을 짐작했다.

 

"저는 피터 피셔(Peter Fischer)예요. 어느 병원으로 모셔다 드릴까요?" 피터 피셔가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수아는 처음 보는 남자에게 몹시도 민망스러웠다. 그리고 수아는 피터 피셔가 이 무더운 여름에 정장을 하고 공원 벤치에 앉아서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었을지 궁금했으며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아는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출산하고 싶지 않았기에 핀센트(Vincentius)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피터 피셔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리는 도중에도 3분 간격으로 산통이 반복되었다. 수아는 산통이 반복될 때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으나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이젠 곧 병원에 도착할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
피터 피셔도 진땀을 흘리면서 고속으로 차를 달렸다.
수아는 첫 출산인데도 별로 고통을 느끼지도 않고 쉽게 출산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아가 아기의 첫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이젠 이 어린 생명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을 수아는 약속했다.

 

수아가 아기를 출산하고 침대에 누웠을 때 산파가 갓난아기를 예쁘게 씻기고 단장을 하여 데리고 와서 수아의 품에 안겼다. 아기는 길고 검은 탐스러운 머리에 오뚝한 코에 총명한 두 눈이 너무나 민수를 닮았다고 수아는 생각했다. 수아는 갑자기 자기를 배신하고 첫사랑의 품으로 돌아간 아기의 생부 김민수를 생각하며 아기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아가야! 엄마가 너를 지켜줄게. 아무 걱정하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거라." 수아는 아기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 어린 생명을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피터 피셔가 수아를 찾아왔다. 돌아간 줄로 알았던 그가 밖에서 거의 네 시간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아기가 너무나 예뻐요. 따님인가요. 아들인가요?" 피터 피셔가 자신의 아기라도 되는 듯 흥분한 모습으로 물었다.
"피셔 선생님 감사합니다. 딸이에요." 수아가 힘없이 말했다.
"제가 가족들에게 연락을 드릴게요. 아이 아빠가 얼마나 기쁘겠어요." 피터 피셔가 아기 아빠에게 소식을 전해준다고 주소를 물었다.
"시내에 시립병원에서 근무하시지요?"
"몇 달 전에 흰 가운을 입고 병원 식당(Kantine)에서 친구분과 식사하시는 것을 뵌 적이 있어요. 저의 조모님이 중병으로 입원을 하셨을 때 방문을 하러 갔었지요."
"시립 병원 근처에 사시나요?" 피터 피셔의 여러 가지 질문에 수아는 무어라고 답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아기 아빠는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가족은 모두 한국에 계셔요." 수아는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피터 피셔는 오히려 수아에게 많은 질문을 쏟아부은 자신이 미안하다는 듯 잠자코 서 있었다.
"그럼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피터 피셔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병원 기숙사에 제 친구 미자에게 제 옷 좀 챙겨 오라고 전해주세요."
수아가 피터 피셔에게 부탁을 했다.
"그럼 편히 쉬세요."
피터 피셔가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날 저녁 미자가 수아의 옷과 필수품을 챙겨 왔다.
"수아야. 이젠 마음 굳게 먹고 아기를 위해서 사는 거야. 알았지." 수아보다 두 살 위인 미자는 수아에게 때로는 언니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고 또 친구가 되었다. 미자는 수아가 10개월 동안 자기에게 주어진 불행한 운명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우울증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을 잘 알았고 미자는 늘 옆에서 같이 울고 같이 웃어주었다.
미자는 수아가 한국에 계신 부모님 곁으로 돌아갈 것을 몇 번이고 당부했다. 이 낯선 독일 땅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기를 키우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아도 앞으로의 삶이 두렵기만 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부모님께도 김민수에게도 그 아무에게도 아기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아기는 혼자서 키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미자와 수아는 앞으로 아기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궁리를 했다. 수아가 아기와 기숙사에서 계속 살 수는
없었다.

 

뜻밖에도 그 이튿날 피터 피셔가 꽃다발과 아기 옷을 들고 방문을 왔다. 그때 마침 간호사가 아기를 데리고 왔다.
"아기 아빠시군요. 축하드립니다. 아기가 아빠를 많이 닮았네요."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피터 피셔가 얼굴을 붉히며, "네, 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을 하며 수아에게 미안하다는 듯 쳐다본다.
"아빠가 한번 안아 보실래요?" 간호사가 피터 피셔에게 물었다.
"제 제가요?" 피터 피셔가 당황을 한 모습으로 되물었다.
"겁내지 마세요. 괜찮아요."
간호사가 아기를 피터 피셔에게 안기고 나갔다.
"죄송합니다." 간호사가 나간 후에 피터 피셔가 간호사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한 자신을 수아에게 사과했다.
"별말씀을요." 수아가 피터 피셔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는 수아의 시선을 피하려고 애를 썼다.
피터 피셔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잠든 어린 생명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면서 무척 감격스러운 모습이었다.
피터 피셔가 아기를 안은 모습이 너무나 보기가 좋았다. 수아는 잠시 피터 피셔를 김민수로 착각을 했다. 그리고 민수가 자기 딸을 이렇게 안아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망상이 수아를 괴롭혔다.
"이름은 무어라고 지으실 건가요?" 수아는 피터 피셔의 물음에 깜짝 놀라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글쎄요. 아들인 줄 알고 여자아이 이름을 미리 생각을 못 했어요."
"쥴리아(Julia)는 어떠세요? 아니면 그냥 쥬리(Juri)도 예쁘네요." 피터 피셔는 자기의 딸이라도 되는 듯 마음이 들떠있었다.
"글쎄요 저도 쥬리가 마음에 드네요." 수아가 웃으며 대답을 했다.
잠시 피터 피셔와 수아의 눈이 마주치자 피터 피셔가 놀래서 시선을 돌린다.
"저는 이 근처에서 친구와 같이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어요." 퇴원하신 후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피터 피셔가 명함을 주고 돌아갔다. 피터가 가지고 온 아기의 옷과 노란 장미들이 너무나 예뻤다.
수아는 아기의 이름을 '쥬리'라고 짓기로 했다.

 

수아는 며칠 후에 쥬리와 퇴원했다.
우선은 기숙사로 돌아왔지만 쥬리와 좁은 방에서 계속 살 수도 없었고 6주일 산후 휴가가 끝난 후에는 다시 근무해야 하는데 어린 쥬리를 맡길 곳이 없었다. 다행히도 독일은 출산 전에 8주의 출산준비 휴가와 출산 후에 6주의 산후조리 휴가가 있었다. 수아는 독일의 잘 정리된 사회복지정치가 과연 선진국답다고 늘 생각했다. 수아는 임신을 한 것을 알고 난 후에 앞으로 출산에 필요한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몹시 걱정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건강보험에서 모든 출산비용도 부담하고 또 산전 산후 휴가에도 계속 월급이 지급되었다.

 

쥬리는 우유도 잘 먹고 예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수아는 쥬리를 볼 때마다 민수의 생각이 나서 때로는 무척 괴로웠다. 차라리 쥬리가 민수를 닮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스물한 살에 생전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되고 모든 것을 바쳤고 영원히 민수와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이렇게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안겨주고 첫사랑에게 돌아간 남자를 잊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수아가 민수의 딸을 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민수가 어쩌면 수아에게 돌아왔을지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쥬리가 2주일이 되던 날부터 수아는 매일 유모차를 끌고 공원에 산책했다. 그날은 폭염이 온종일 찌는 듯하더니 별안간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수아는 쥬리가 비에 젖지 않게 유모차의 지붕을 올렸다. 수아의 얼굴을 촉촉이 적셔주는 가늘게 내리는 보슬비가 무척 시원했다. 공원에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오랜만에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손에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거닐고 있었다.

 

"오! 안녕하세요. 아기가 벌써 산책을 나왔네요."
"어디 보자. 많이 컸네!"
지나가던 피터 피셔가 수아를 발견하고 무척 기뻐했다. 피터 피셔는 오늘도 단정하게 정장을 하고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이름을 쥬리라고 지었어요. 예쁜 이름을 지어주셔서 고마워요."
"비가 내리는데 제 사무실이 옆에 있는데 잠시 비가 그칠 때까지 거기서 기다리세요."
피터 피셔는 이 공원길이 자기의 집에서 사무실로 가는 빠른 지름길이라고 했다.

 

수아는 피터 피셔의 사무실로 따라갔다. 큰 사무실에는 커다란 책상이 세 개가 놓여 있었고 조그만 주방이 있었고 문이 열려있는 방에는 침대도 놓여있었다. 피터 피셔는 이 사무실은 2년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조부님이 변호사 사무실로 사용했으며 피터 피셔는 대학을 졸업하고 조부님과 같이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머리가 젖었네요. 이 타월로 닦으세요. 여름 감기 걸리면 고생하세요."
피터가 수아에게 타월을 주었다.
"앉으세요. 제가 차를 끓여올게요. 홍차 드시나요?"
피터 피셔가 물었다.
"네, 홍차 좋아합니다."
피터 피셔가 홍차를 담은 장미꽃 무늬의 두 개의 찻잔을 쟁반에 얹혀서 들고 왔다.
"천천히 드세요. 뜨거워요."
피터 피셔가 티스푼으로 김이 무럭무럭 나는 홍차를 저어주면서 수아에게 말했다.
"그날 병원방 문에서 이름표를 읽었는데 민수아 씨라고요. 수아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네, 피셔 선생님, 민수아예요."
피터 피셔는 수아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앞으로 쥬리와 어떻게 생활을 할지도 어떻게 근무를 할는지도 물었다.
수아는 "아직도 쥬리를 맡아줄 사람도 그리고 새로운 아파트도 구하는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수아씨, 저는 가족이라고는 한 분뿐인 저의 조모님이 지난 오월에 돌아가셨어요."
"큰 집에서 현재 혼자서 지내고 있어요. 이층에 비어있는 방이 많은데 괜찮으시다면 당장이라도 아무런 부담도 갖지 마시고 이사를 오세요."
"정원도 넓으니까 쥬리가 걷기 시작하면 뛰어놀기도 좋을 거예요."
수아는 피터 피셔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는 것을 느꼈다.
"고맙습니다. 피셔 선생님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날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터 피셔는 29살이라고 했으며 자기의 부모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했다.

 

"제2 차 세계 대전에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독일제국을 이루기 위한 소비에트 연방과의 전쟁을 1941년에 시작했지요."
"독일-소련 전쟁의 전투 중 하나인 스탈린 그라드(Stalingrad) 전투는 가장 치열한 전투였지요."
"히틀러가 1942년 12월에 전투에 전패하고 1943년 1월 말에서 2월 초에 대부분의 병사들은 추위와 재료와 식량 부족으로 명령에 따라 전투를 중단했으며 공식 항복도 없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시베리아로 강제노동에 끌려가서 영하 40도가 넘는 강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으셨지요."
피터의 눈시울에는 눈물이 고여있었고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의 어머니는 그해 여름에 피난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저를 출산하고 심한 산후 출혈로 목숨을 잃으셨고 저의 조부모님이 저를 키웠지요."

 

피터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 원통하다고 했다.
"저의 조부는 변호사로서 전쟁이 끝난 1945년 해방 후부터 현재 이 사무실에서 변호사로 일을 하셨지요."라고 말을 이었다.
수아는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고 생각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피터를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아무런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비가 그치어 수아는 쥬리의 유모차를 밀며 기숙사로 향했다. 그날 밤 수아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을 새웠다.
그 이튿날 수아는 피터 피셔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피셔 변호사님, 어제 말씀하신 것 곰곰이 생각했는데 변호사님 말씀대로 하겠어요."
"수아 씨, 좋아요. 다행이에요. 나는 또 수아 씨가 오해라도 할까 봐 걱정했어요. 당장이라도 이사 오세요."
"네, 주말쯤이 어떨까요?" 수아가 대답을 했다.
"수아 씨, 짐을 싸놓고 기다리세요. 토요일 아침 열 시에 모시러 갈게요."

 

1972년 7월 29일, 토요일,
오늘은 쥬리가 태어난 지 24일째이다. 수아는 이사할 준비를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피터 피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과연 잘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아침 10시에 피터 피셔가 수아와 쥬리를 기숙사로 데리러 왔다.
짐이라고는 겨우 여행 가방 두 개와 쥬리의 유모차뿐이었다. 병원의 원장도 직원들도 피터 피셔가 쥬리의 아빠인 줄 알았고 미자는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수아와 쥬리는 이층으로 이사를 했고 이렇게 피터 피셔의 집에서 같이 지내게 되었다. 피터는 쥬리를 친딸 이상으로 사랑했다. 피터는 쥬리의 방에 새로운 도배를 하고 정원의 체리 고목나무에 그네도 설치했다.

 

어느 여름날,
어느덧 수아와 쥬리가 이사를 온 지 2주일이 되었다. 온종일 찌는듯한 한여름의 폭염이 지나가고 시원한 바람이 대지를 식혀주는 저녁이다.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저녁 하늘을 물들였다. 쥬리는 고목나무 그늘 밑에서 잠이 들고 피터와 수아는 정원에서 스테이크와 감자 샐러드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달콤하고 감미로운 빨갛다 못해 검은 보르도(Bordeaux) 와인을 마시며 많은 대화를 했다.

 

갑자기 피터가 빨간 장미 한 송이를 꺾어서 수아에게 주면서 사랑을 고백했다.
"수아 씨 나는 수아 씨를 처음부터 사랑했어요."
"수아 씨 사랑해요."
수아는 피터가 자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지식인이고 피터가 수아에게 베푸는 은혜를 잘못 생각하면 안 된다고 늘 생각했었다.
"피터 씨, 저도 피터 씨를 좋아해요. 하지만......."
수아가 말을 더듬었다.
"수아 씨 그럼 됐어요. 저는 수아 씨가 저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피터가 수아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넓은 가슴에 안고 길고 검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수아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사랑스러운 눈으로 피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피터는 '수시 봉(Susi Bong)'이라는 영화를 본 후부터 그런 검고 긴 머리의 아름다운 동양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 늘 소원이었으며 수아는 수시 봉 보다도 더욱 아름답고 영리하다고 했다.

 

수아와 피터 피셔의 사이는 점점 가까워졌고 피터 피셔는 한 가정의 가장이라도 된 것처럼 기뻐했고 수아와 쥬리를 끔찍하게 사랑했다. 수아도 이런 피터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아는 매일 맛있는 요리로 저녁상을 차려놓고 지아비를 기다리는 아내처럼 피터 피셔를 기다렸다. 피터는 한국 된장찌개도 김치도 매우 즐겨서 먹었다. 수아는 더 바랄 것 없이 주어진 모든 환경에 만족했고 이렇게 가슴이 부풀도록 행복한 느낌은 수아가 태어난 후로 처음이었다.

 

피터는 근무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쥬리를 품에 안고 "우리 공주님 아빠가 왔어요." 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수아는 그때마다 쥬리의 생부 민수도 피터만큼 쥬리를 사랑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수아는 피터의 권고로 6주의 산후 휴가가 채 끝나기 전에 병원에 사직서를 냈다.
어느 날 피터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올리버 슐츠(Oliver Schulz) 변호사를 초대했다. 그는 피터와 6개월 전부터 변호사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고 있었다. 피터보다 세 살이 위인 등치가 크고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동료 변호인 안젤라(Angela)와 결혼을 했으며 4개월 된 아들이 있었다.

 

"네가 쥬리구나. 이렇게 예쁜 딸을 두어서 자네는 좋겠네." "이 사람아! 이렇게 아름다운 제수씨를 누가 빼앗아 갈까 봐 여태까지 비밀로 해왔나."
하면서 정말로 부러운 눈치였다.
피터가 쥬리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으며, "우리 공주님이 예쁘지?" 하면서 웃는 모습이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1972년 10월 10일, 화요일,
오늘은 수아의 22세 생일이다. 수아와 피터는 간단한 결혼식을 올리고 쥬리를 쥬리 피셔(Juri Fischer)라고 출생신고를 했다. 수아나 피터는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었기에 규모가 큰 결혼식은 생략하기로 했다. 결혼식 후에는 몇몇의 친구들과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을 뿐이다.
"수아 씨, 이젠 우리는 한 가족이야."
피터가 좋아서 어쩔 바를 몰랐다. 수아는 현모양처로서의 삶이 무척 행복했다. 이렇게 세 식구는 동화책 속의 행복한 가족이었다.
수아는 자신이 이런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 늘 과분하다고 생각했고 행여나 이 꿈같은 행복이 깨어질까 하는 두려움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1972년 10월 13일, 금요일,
오늘은 쥬리의 백일잔치다. 독일은 백일잔치라는 것은 없지만 수아는 한국식으로 잔치상을 차리고 미자와 올리버 부부를 초대했다. 따듯하고 화창한 가을 날씨다. 정원의 고목나무 그늘 밑의 큰 담요 위에서는 쥬리와 올리버의 6개월 된 아들 크리스(Chris)가 잘 놀고 있었다.

 

이듬해 여름 쥬리가 한 살이 되던 해에 수아네 세 식구는 한국을 방문했다. 수아의 부모님은 수아가 독일인과 결혼을 한 것을 늘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나 막상 피터를 보는 순간부터 이 세상에서는 둘도 없는 모범 사위라고 칭찬을 했다.
사촌오빠 강호 부부가 수아를 방문했다. 강호는 수아에게 민수가 그 첫사랑의 여인과 아들을 낳았고 결혼을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민수는 부친의 건축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수아네 식구는 여주읍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영지를 방문했다. 영지는 그 사이에 아들 정우를 낳았고 무척 행복해 보였다. 영지의 남편 최덕주 약사는 인자하고 착한 남편이었다. 수아는 그때 영지가 파독 계획을 포기하고 결혼을 한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영지와 수아가 파독 간호사로 해외개발공사에 지원서를 내고 파독 준비를 하던 중에 파독을 반대하던 영지의 부모님이 서둘러서 결혼을 시키려고 했다. 마침 영지가 간호학생 시절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병원 원장의 사모님이 동생이 군대 제대를 하고 돌아왔다고 영지 어머니에게 두 사람을 결혼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영지의 남편과 피터는 만나는 순간부터 마음이 잘 통했다. 영지네 식구와 신륵사 구경을 하고 생선 요리를 먹고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영지의 권고로 하룻밤을 묵고 왔다. 영지네 부부는 꼭 수아네 식구를 독일에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수아 여사님, 잘 주무셨어요?"
샌디 리거 간호사의 정겨운 목소리에 수아는 깜짝 놀라 긴 환상에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또 긴 꿈을 꾸었던 것 같았다.

 

오늘은 리거 간호사가 무척 행복한 모습이었고 그녀의 간호사 가운에서는 수아가 늘 사용하던 샤넬 향수의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가 퍼졌다. 매일 뒤로 묶었던 그녀의 긴 금발 머리가 오늘은 어깨와 가슴 위로 흩어져 있었다. 스무 살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의 웃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수아는 문득 쥬리 생각이 났다. "쥬리가 혼자 큰집에서 외롭지나 않을까."
리거 간호사가 수아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수아의 반응을 기다리는 듯했다. 수아는 동그란 눈으로 리거 간호사를 바라보며 "네, 리거 간호사님 잘 잤습니다."라고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곧 의사 선생님이 오실 거예요." 하며 리거 간호사가 세수를 시켜주고 양치질을 해주고 새로운 꽃무늬의 가운을 입혀주고 얼굴에 크림까지 바르고 수아의 길고 검은 머리를 빗겨주었다. "거울 좀 보세요. 오늘은 아주 아름다우시네요." 하며 리거 간호사가 수아에게 거울을 보여주었다. 수아는 "이게 정말로 내 모습이란 말인가?" 하며 자신의 핼쑥해진 모습과 많은 흰머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리거 간호사가 종합 비타민 링거를 중심정맥 카테터에 꼽고 하얀 영양죽이든 병을 위장튜브에 연결하고 모니터를 점검하고 방을 나갔다. 그녀가 남기고 간 감미로운 샤넬 향수 냄새가 너무나 좋았다.

 

"도대체 내가 왜 여기 누워있단 말이야!" "빨리 일어나서 피터의 묘소에도 가야 할 텐데..." "정원에 할 일도 많은데..." 수아는 온갖 힘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수아는 머릿속을 맴도는 많은 잡념으로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병실 칸막이 커튼 뒤에서 매일 고통스럽게 신음을 하던 환자가 결국은 오늘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빨리 환자 가족에게 연락하세요."라는 마이어 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간호사들은 서둘러서 이미 고인이 된 환자의 침대를 밖으로 밀고 나갔다.

 

수아는 또다시 짙은 안갯속에 아물거리는 추억 속에 깊숙이 빠졌다. 수아는 갑자기 첫사랑 민수 생각이 났다. 모든 일들이 어제만 같이 기억이 생생하다.
1971년 10월 5일, 화요일,
수아가 독일에 온 후 민수가 딱 한 번 편지를 보낸 후 소식이 끊겼다. 수아는 민수에게 꼭 무슨 일이 일어난 것만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전화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공중전화 3분의 통화료가 100마르크가 넘어서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드디어 두 달이 채 안되던 날 사촌 오빠 강호에게서 편지가 왔다.
"수아야, 놀라지 말아라. 민수는 부모님의 권고로 임신을 한 첫사랑의 여인과 곧 결혼을 한단다." "너도 민수를 잊고 너무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사촌 오빠 강호의 잔인한 편지였다.

 

수아는 독일에 온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 바빴다. 여덟 시간 근무 후에는 헤겐베르거(Hegenberger) 박사님에게 두 시간의 독일어 수업을 받았다. 수아는 자기가 임신을 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두 달 후에 수아는 자기가 민수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깊은 절망에 빠졌다. 이제 독일에 온 지 두 달이 되었는데 어떻게 이 현실을 감당을 해야 할지 몰랐다. 독일은 낙태 수술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수아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너무나도 많은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었다. 앞으로 낯선 나라에서 게다가 이나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미혼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앞날이 캄캄했다. 가끔은 죽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자고 생각했지만 고향의 부모님께 그런 선택을 하려고 하는 자신이 무척도 부끄럽고 큰 죄책감이 들었다. 때로는 유산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임신 5개월에 접어들어 부풀어 오르는 임신부의 몸매를 감추기가 무척 고통스러웠다. 가끔은 태동도 느낄 수 있었고 그때마다 수아는 남몰래 소리를 죽이며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유산이 되기를 바랐던 자신이 천벌이라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미안해 아가야! 엄마를 용서해다오."
수아는 이제부터는 주어진 운명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인체에서 살아있음을 알리는 태아에 대한 사랑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수아는 다섯 달이 넘어서야 미자에게 사실을 이야기했다. 미자는 심각한 자세로 "수아야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하면서 재삼 수아가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권고했다.
"안돼! 어떻게 임신한 몸으로 부모님께 돌아간단 말이야." "어떻게 해서라도 이곳에서 아이를 낳을 거야."
수아는 이미 굳은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그래 수아야, 너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내가 도울 수 있는 대로 도울게." 미자가 수아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아는 민수에게도 부모님께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병원 직원들에게는 아기아빠는 군대 복무 중이라고 말했다. 다행히도 독일인들은 한국인들과 달라서 별로 남의 사생활에 참견을 하지 않았고 미혼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도 그들에게는 예사로운 일이었다. 병원의 원장도 병동의 수간호사도 수아의 임신을 알고부터는 모두 축하를 해주었고 자기들이 임신부라도 되는 것처럼 기뻐했다. 수아의 병원은 천주교가 운영하는 종합병원이었으며 몇몇의 간호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간호사들이 수녀였다. 수녀들도 상상외로 이해심이 컸고 수아를 무척 아껴주었다.

 

수아는 다시 병실을 둘러본다.
병실 칸막이 커튼 뒤에서 밤낮으로 고통스러운 신음을 하던 환자가 저세상으로 가고부터는 병실이 견딜 수 없도록 조용하다. 수아는 몰려오는 공포로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죽어서 이미 무덤 속에 묻힌듯한 기분이다. 수아의 심장을 지켜주는 모니터의 소리만이 박자를 맞추어 똑똑 울려 퍼진다.

 

병실 창밖으로 넓은 잔디밭이 보이고 각색의 예쁜 수국이 보인다. 수국은 수아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수아의 정원에는 여름 내내 수국이 아름다웠고 주방 식탁에도 피터의 서재에도 늘 수국이 화병에 꽂혀있었다.

 

피터의 웃는 모습이 또다시 수아의 기억 속에서 마치 허공에 퍼져 오르는 안개처럼 맴돌았다.
피터는 이혼 건 전문 명변호사로서 이 도시에서 유명했다. 쥬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잘 자라고 있었다. 어느덧 수아와 피터는 17년이라는 세월을 같이 지냈다. 쥬리도 벌써 고등학교 졸업반이다.

 

피터는 어느 날 수아에게 물었다.
"여보, 우리 둘째를 가지면 어떨까?"
피터의 그 물음에 수아는 깜짝 놀랐다. 언젠가는 피터가 그런 질문을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늘 조마조마했었다. 피터가 처음으로 둘째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말을 꺼낸 것이 의아했다. 수아는 사랑하는 딸 쥬리에게 생부에 대한 사실을 알려주지 못한 것과 쥬리를 임신했을 때 유산이 되길 바랐던 것에 대한 큰 죄책감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수아는 절대로 둘째는 갖지 않기로 결심했었고 오직 쥬리만을 위하고 쥬리만을 사랑하며 그 죄를 갚으면 살기로 결심했었다.

 

"여보, 하지만 나는 공부를 하고 싶은데요. 젊었을 때 의학공부를 하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그리고 쥬리도 벌써 17살이에요. 나도 올해 서른아홉 살이 되잖아요. 쥬리가 동생을 보면 나이 차이도 많고요."
수아는 피터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지 당신 말이 맞아요. 나도 벌써 마흔여섯인데 둘째는 포기합시다."
"당신이 하고 싶은데로 해요. 공부가 하고 싶으면 공부도 하고요. 아직은 늦지 않았어요"
피터가 수아의 길고 검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스럽게 속삭였다. 피터는 수아에게 사랑스러운 남편이었고 좋은 친구였고 때로는 꼭 수아의 존경스러운 아버지와 같았다.

 

수아는 옛날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자연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피터는 수아와 쥬리의 소원을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려고 노력을 했다.
쥬리는 이곳 유럽 학교에서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40km 떨어진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대학에서 의학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 기숙사로 이사를 갔다.

 

피터는 유명한 변호사인 대신 그만큼 의뢰해오는 클라이언트(Klient)와 이혼 건이 많았다. 법원에서 거의 매주마다 이혼재판으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수아는 피터에게 쉬어가면서 일을 하도록 늘 당부를 했지만 피터는 여전히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피터는 사무실에서 밤늦게까지 재판 준비에 늘 바빴고 집에 돌아와서도 자주 재판을 의뢰한 이혼 대상자들과 자주 전화연락을 했다.
하루는 법원에서 돌아온 피터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창백한 얼굴로 가슴을 두드리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응급차에 실려가서 병원에서 일주일을 치료를 받고 다시 퇴원을 했다. 의사의 말로는 스트레스로 인한 고혈압이라고 했다.

 

1993년 8월 15일, 일요일,
피터가 50세가 되던 화창한 여름날, 생일 파티로 정원에서 바비쿠를 했다. 독일은 50세 생일이면 인생의 반평생이라고 큰 파티를 했다.
수아는 빨간 원피스에 피터가 지난해 결혼선물로 준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로 예쁘게 단장을 했다. 피터는 자기의 아름다운 아내가 늘 자랑스러웠다. 손님은 거의 40명이었다. 피터도 수아도 가족이 없는 탓으로 모두가 친구들 뿐이었다. 수아는 친구라고는 미자뿐이었고 병원에서 같이 근무하던 독일 의사와 간호사 몇 명을 초대했다.
미자는 그동안 독일에서 미군 장교로 복무 중인 프랑크 밀톤(Frank Milton)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았고 다음 달에는 프랑크의 미군부대가 철수되어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슬픈 소식을 전했다. 1989년 독일이 통일이 된 지난 몇 년 전부터 독일에 있는 미군부대가 하나 둘 철수를 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수아는 공부를 마쳤지만 피터의 건강이 염려되어 직장생활은 포기하기로 했다. 이젠 수아가 피터를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고 수아는 피터가 수아에게 준 사랑과 정성을 몇 배로 돌려주고 싶었다.

미자와 프랑크가 미국으로 떠난 며칠 후 한국에서 영지의 남편 국주에게서 영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편지가 왔다. 수아와 어린 시절부터 형제 같이 지냈던 영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 허무하기만 했다. 쥬리는 기숙사에서 주말에나 집에 들렀다. 수아는 몹시도 외롭고 쓸쓸했다.
몇 명의 독일 친구들이 있었지만 미자와 영지와 같이 마음을 털어놓고 의지하고 같이 웃고 울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수아는 정원을 가꾸고 글을 쓰기에 집중을 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와 글 쓰기를 좋아했던 수아는 이곳 재독 한국 교민들을 위한 교민 신문에 자신의 시와 수필을 자주 기재했다. 그리고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다.

 

1999년 12월 15일, 수요일,
수아는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크리스마스 츄리를 장식하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었다.
피터는 밤이 깊어서야 퇴근을 하는 날이 잦았다.
그날 역시 피터는 열 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수아는 피터가 밤늦게까지 재판 준비로 서류를 뒤적이며 일을 하고 있을 때는 혹시 피터가 혼자 사무실에서 쓰러지기라도 했을까 봐 마음이 불안했다. 피터의 동료 올리버는 노동법률 변호사로서 별로 스트레스가 없었으며 늘 저녁 6시면 퇴근을 했다.
피터는 지난번 고혈압으로 혼절을 하고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일속에 파묻혀 살았다.

 

그날 밤에도 열 시가 넘어도 피터가 퇴근을 하지 않아서 수아는 피터의 건강이 몹시도 걱정이 되었다. 수아는 피터가 좋아하는 김밥을 만들고 또 지난 헝가리 여행 때 가지고 온 토카야(Tokajer) 와인을 바구니에 넣었다. 피터를 깜짝 놀래 주려고 집에서 10분밖에 되지 않는 피터의 사무실로 갔다. 밖에는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수아는 지난주에 피터가 선물한 검은 밍크 오바를 입고 눈을 맞으며 피터를 깜짝 놀래 줄 생각을 하니 소녀 같이 마음이 설레었다.

 

수아가 사무실 문을 열었다. 피터의 사무실에는 불이 꺼져있었다. 수아는 혹시 피터가 이미 집으로 갔을 것이라 믿었고 서로 길이 엇갈려서 만나지 못했다고 믿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 순간 사무실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날카로운 웃음소리에 수아는 깜짝 놀라서 발걸음을 멈췄다.

 

사무실 주방 옆에 있는 피터가 휴식을 하는 조그만 방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그 늙은 여자와 이혼하고 나한테로 와요."
"비안카, 그건 절대로 안돼. 난 수아를 버릴 수 없어."
"그럼 나는 어쩌란 말이에요." "날 사랑한다면서요."
"그래도 난 수아와 헤어질 수 없어요."

 

수아는 사무실 정문 앞에 펄썩 주저앉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고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수아는 조용히 사무실 문을 닫고 정신 나간 사람같이 눈을 맞으며 공원 지름길로 집을 향하여 달려갔다.
수아는 와인 한잔에 수면제를 먹고 침대에 누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고 그냥 하룻밤을 자고 내일 아침 깨어나면 모든 것이 악몽처럼 사라지기만을 바랬다.

 

그 이튿날 수아는 일찍 잠이 깨었다. 피터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옆에 누워 있었다. 수아는 어젯밤의 일들이 꿈이었기를 바랐지만 그 끔찍한 일들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수아는 조용히 일어나서 모닝 드레스를 걸쳐 입고 주방에서 커피와 토스트와 딸기쨈으로 아침식사 준비를 했다. 피터가 잠이 깨어 주방으로 왔다.
"당신 잘 잤어요. 으음, 커피 향이 좋네, 역시 아라비카(Arabica) 커피가 최고야."
피터가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수아는 28년간 같이 살아온 피터가 너무나 뻔뻔하고 어쩌면 이렇게 몰라보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없이 슬펐다.
피터가 수아의 뺨에 아침 키스를 하려고 할 때 수아가 고개를 돌렸다.
"당신 어디 아파요. 얼굴이 창백하네."
피터는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고 걱정되는 눈으로 수아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별것 아니에요. 머리가 좀 아파서요."
"그럼 내가 약국에 다녀올게요. 어서 침실에 가서 누워있어요."

 

피터가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 왔다.
수아는 정말로 머리가 아팠다. 피터가 주는 약을 먹고 커튼을 닫고 침대에 누었다.
"당신 가만히 누워있어요. 점심때 시간을 내서 집에 다녀갈게요."
피터가 사무실로 간 후에 수아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수아는 절대로 피터를 용서할 수 없었고 용서하지도 않기로 했다.

 

수아는 벌떡 일어나서 커튼을 열어젖히고 화장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 초라해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비안카라는 그 여자의 말대로 거울 속의 수아는 정말로 늙은 여자였다. 내년이면 50세가 되는 거울 속의 늙은 여자의 얼굴에는 잔주름이 수없이 많았고 기미가 얼굴을 덮었다. 수아는 “거울 속의 늙은 여자가 정말로 나란 말인가?, 아니야! 아니야!“ 하며 침대 모퉁이에 털썩 주저앉았다.
옛날에는 누구나 수아가 아름답다고 했었는데 이 많은 주름살이 언제부터 수아의 얼굴을 덮었는지?
아무리 애를 써도 옛날의 예쁜 얼굴은 찾을 수가 없었다. 꼭 수아의 팔십 세가 넘으신 어머니의 굴곡 많은 얼굴을 보는 듯했다. 수아는 밀려오는 우울증과 분노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베갯속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흐느끼며 울었다. 모든 것이 남의 일만 같았고 악몽을 꾸었던 것 같았다.

 

“그래 헤어지자, 피터가 늙었다고 조강지처를 버리고 젊은 여자를 선택했는데 그런 남자에게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수아야. 힘내라.“
수아는 혼자 중얼거리며 쓴 미소를 지었다. 우선은 쥬리에게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지 걱정이 컸다. 쥬리는 하이델베르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곳 대학 병원 소아과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수아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우선은 엘자스(Elsass)의 수리 중인 별장에 머물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기로 했다. 폐허가 된 별장에는 다행히도 지난가을 피터가 일주일간 시간을 내어서 주말에 거주하기 위하여 우선은 주방과 거실을 수리했다.
약 30km 거리의 독일과 프랑스의 경계선을 지나서 별장까지는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으니 수아는 어둠이 오기 전에 도착하기 위하여 서둘렀다.
수아는 지하실에서 두 개의 여행가방을 꺼내왔다. 우선 필요한 옷과 필수품을 챙기고 피터에게 편지를 썼다.
“여보, 곰곰이 생각한 결과 당신과 헤어지는 게 현명한 것 같아요. 날 찾지 마세요.“
수아는 차고에서 차를 가져와 현관문 앞에 주차했다.
수아가 가방을 들고 침실 문을 나오려고 할 때 피터가 왔다. 수아는 피터가 점심시간에 다녀간다는 말을 깜빡 잊었다.
"여보, 어딜 가려고 그래요." 피터가 놀래서 물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 놓여있는 수아의 편지를 발견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헤어지다니요."
수아는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피터가 수아의 옆에 앉아서 수아를 끌어안으려고 할 때 수아가 피터를 떠밀었다.
"여보 무슨 일이 있어요? 어딜 가려고 그래요."
피터가 물었다.
"나 다 알고 있어요. 당신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아무런 변명도 하지 마세요." 수아는 차근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 "
피터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긴 한숨만 내쉬었다.
"여보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그냥 일을 저지르고 말았어요. 나도 많이 괴로웠어요."
"비안카와 정리를 하려고 노력을 했었는데 뜻대로 되지가 않아요. 나도 비안카를 사랑해요."
수아는 그래도 비안카와의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피터의 말을 기대했지만 피터는 비안카를 사랑한다고 했다.

 

피터는 비안카 멘젤(Bisnca Menzel)이 일 년 전에 피터에게 이혼재판을 의례 한 후부터 두 사람은 알게 되었고 수아보다 스무 살이나 적은 30대의 젊은 여자라고 피터가 모두 고백을 했다.

 

"당신의 선택이 그렇다면 행복을 빌겠어요."
수아가 가방을 들고 주차장으로 가려고 하는데 피터가 앞길을 막으며 가방을 빼앗았다.
"여보 알았어요. 나가면 내가 나가야지요. 당신은 아무 데도 가지 말아요." "여보 내가 많이 미안해요. 내가 나갈 테니 여기서 살아요."
피터가 서둘러서 짐을 챙겨서 현관문을 나가면서 수아에게 "여보 미안해요. 내가 가끔 연락할게요." 했다.

 

쥬리도 곧 사실을 알게 되었고 몇 번이나 아빠를 만나서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와 다시 화해를 하라고 애원을 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피터는 금발머리의 젊은 비안카의 집에서 그녀와 달콤하고 행복한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덧 피터가 집을 나간 지 10개월이 되었다. 수아는 피터가 없는 하루하루가 지루했고 슬펐고 아무런 삶의 의미가 없었다. 때로는 배신감에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수아에게는 늘 하나뿐인 딸 쥬리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기에 죽음도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피터가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수아는 늘 피터의 건강이 염려가 되었다. 밤이 되면 혹시 피터가 또 밤늦게까지 일을 하지나 않는지 수아는 자주 피터의 사무실 앞을 기웃거리며 불이 꺼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마음을 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수아가 피터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으며 피터가 언젠가는 꼭 돌아오기를 바랐다.

 

수아의 중환자실 칸막이 커튼 뒤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보호자님께서는 준비를 하셔야겠어요, 부인께서 오늘 밤을 넘기실지 모르겠어요." "모르핀(Morphin) 투여로 통증은 느끼시지 않으시고, 계속 주무실 거예요." 의사가 가족들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제 아내가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 다행이에요." "제가 곁에서 지켜주겠어요." 남편이라는 젊은 사람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수아는 또다시 깊은 추억의 세계, 환상 속에 깊이 잠겼다.
2000년 10월 10일, 화요일,
그날은 수아의 50세 생일이었다. 오전에 쥬리가 와서 레스토랑에서 같이 점심을 먹고, 쥬리는 야간근무라서 하이델베르크로 돌아갔다.
"엄마, 다음 주에 또 올게."
수아는 사랑하는 쥬리의 빨간 폴크스바겐(Volkswagen)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오후에는 독일 친구 로티(Lotti)와 마리(Marie)가 생일 케이크와 샴페인을 들고 왔다. 뒷 정원 체리나무 그늘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로티와 마리는 수아와 같은 병동에서 근무했으며, 수아에게는 유일한 친구였다. 수아의 거주지는 두이스부르크(Duisburg)나 에쎈(Essen) 시와 같이 광산이 없는 도시라서 한국의 광부도 없었고, 프랑크푸르트(Frankfurt)나 함부르크(Hamburg) 시와 같이 큰 도시가 아니어서, 한국인 간호사도 볼 수가 없었다. 유일한 한국 친구 미자가 미국으로 떠난 후로는 큰 도시에나 나가야 한국인을 볼 수가 있었다.

 

로티는 건축회사 사장인 얀(Jahn)과 결혼하여 아들 토미(Tomi)를 낳았고, 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 사모님이다. 그렇지만, 로티도 제 나름대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로티의 남편 얀은 식성이 너무나 좋아서 몸무게가 점점 늘어서 걱정이었고, 아들 토미는 대학에서 경제학과를 5년째나 다니다가 포기하고, 아버지의 회사에서 막노동일을 돕고 있어 고민이었다.

 

마리는 아들 니키(Niki)가 출생하기도 전에, 남편 율리우스(Julius)가 혈액암으로 결혼생활 2년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니키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다시 병원에서 밤 근무를 했었다. 마리가 44세가 되던 해에 일 년 전에 부인을 잃고, 혼자 사는 열 살이나 연상인 알리안즈(Allianz) 보험회사 이사장 귄터(Günther)를 알게 되어 열렬한 사랑 끝에 재혼을 했다. 마리가 46세가 되던 해에 임신을 했다는 너무도 기쁘고, 한편으로는 충격적인 소식으로 온 도시가 시끄러웠고, 어떤 친구들은 '마리가 제정신이냐.'라고 비웃기도 했다. 로티와 수아는 마리와 같이 기뻐했고, 마리의 무사한 출산을 빌었다. 다행히도 8월의 폭염 속에서 하나(Hanna)가 출생했고, 산모도, 아기도 건강했다.

 

"얀이 벌써 100kg이 넘어, 배가 나와서 걱정이야."
"저녁마다 초콜릿을 수없이 먹는단다."
"운동도 하고, 다이어트를 해라고 해도, 들은 척 만 척이야."
로테는 얀이 온종일 사무실에만 앉아있고, 전혀 움직이지 앉는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오면, 우선은 먹을 것을 찾는다고 했다.
하지만, 얀의 몸무게 증가에는 로테의 책임도 컸다. 로테는 요리가 취미 었고, 매일 칼로리가 많은 육류 요리를 즐겨서 했고, 케이크가 떨어지는 날이 없이 자주 케이크를 만들었다. 로티의 거실 장롱 서랍에는 항상 각종 초콜릿으로 꽉 차있다. 로티는 키도 컸지만, 그의 몸무게도 장난이 아니었다. 80kg은 훨씬 초과할 것으로 추측된다. 로티의 핸드빽에도 늘 로티가 즐겨먹는 땅콩이나 건포도가 든 초콜릿이나 꿀사탕이 들어있었다. 수아도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도 로티가 생각날 때면, 늘 무엇을 먹는 모습이 머리에 떠오른다. 다이어트도 수차례 했지만, 늘 요요 상태다. 로티는 친한 친구의 일이라면, 자신의 일과 같이, 이유불문으로 돕는 인정 많은 친구였다. 단 한 가지, 자신의 과도한 식성을 컨트롤할 수 없는 단점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몸매에 대하여 크리틱 하는 사람에게는 인정, 사정없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친구들은 로티의 성격을 잘 아는지라, 그 누구도 로티의 몸무게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야 하는 타부 테마였다.

 

"토미는 저녁이면 흙으로 진창 만창이 된 옷으로 돌아온단다. 속이 상해서 죽겠어."
로티는 외동아들 토미가 그런 힘든 막노동을 하는 것이 몹시 안쓰러웠다. 토미가 지난주에 이곳 공학대학 건축학과에 원서를 냈는데, 곧 합격 통지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로티는 토미가 아버지 얀의 회사를 물려받는 것이 소원이었다. 얀은 건축가로서 100여 명이 넘는 회사원과 노동자가 얀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유럽 연맹 후에 새로운 유럽 노동 제도가 시작된 후부터는, 일자리를 찾아서 폴란드나 루마니아에서 온 노동자를 거의 절반이나 낮은 임금으로 고용해서 많은 재산을 모았다.

 

"하나는 잘 자라지? 니키도 잘 지내고 있고?" 수아가 물었다.
"그럼, 하나는 벌서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니키는 교육대 졸업반이고." 마리가 무척 흐뭇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벌써 네 살이 된 하나는 곱슬머리 금발 머리에, 사파이어 파란 눈이 꼭 마리를 닮은 인형 같이 예뻤다. 마리의 남편 귄터는 이미 은퇴를 하고, 환갑이 거의 다 된 나이에 얻은 보석 같은 소중한 딸 하나에게 온 정성과, 사랑을 쏟아부으며, 무척 행복했다.

 

저녁 7시 로티와 마리가 돌아간 후 수아가 주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침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피터가 빨간 장미 꽃다발을 들고 서있었다.
"당신 잘 지냈어요? 생일 축하해요. 몸이 많이 야위었네요. 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
피터가 걱정이 되는 듯 물었다.
"괜찮아요. 잘 지내고 있어요."
수아가 당황한 모습으로 말했다.
"여보 미안해요. 내가 왜 당신에게 그런 못된 짖을 했는지 몰라요."
"여보 날 용서해줘요."
피터가 심각한 표정을 하며 후회하는 모습으로 수아에게 용서를 빌면서 모든 사실을 말했다.
피터가 비안카에게 이사를 간 후 6개월도 되지 않아서 비안카가 대학 동기생과 바람을 피기 시작했다고 했다. 비안카는 전남편 얀 멘젤(Jan Menzel) 교수와 결혼생활을 할 때도 다른 남성들과 남편을 속이며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결국은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다고 했다.

 

피터가 수아를 안으며 옛날같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보 내가 눈이 멀었었나 봐요. 내가 앞으로는 잘할게요."
수아가 아무 말도 없이 피터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여보, 오늘 당신 생일인데 울면 되나요. 우리 생일 파티하러 나갑시다." 피터가 손수건으로 수아의 눈물을 닦아주며 재촉했다.
수아는 피터의 50세 생일날 입었던 빨간 원피스와 진주 목걸이를 걸고 베이지색의 케이프(Cape)를 어깨에 걸쳤다.
피터는 수아의 모습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며 수아의 뺨에 키스를 하며 속삭였다.
"당신은 지금도 옛날같이 예뻐요."

 

수아와 피터는 예전에 자주 찾았던 그리스 레스토랑에서 양고기 스테이크(Lammsteak)와 감자튀김(Pommes Frites)을 먹고, 달콤한 사모스(Samos) 와인을 마셨다. 라디오에서는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의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이 은은히 들려왔다.
"자, 우리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 건배합시다."
피터가 와인 글라스를 들면서 수아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두 사람은 글라스가 깨지도록 되찾은 사랑의 축배를 하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다. 피터가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 수아의 손을 꼭 잡았다.
"여보 사랑해요, 이젠 당신 손을 놓지 않을게요." 피터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네, 돌아오셔서 고마워요."
수아가 피터의 넓고 포근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피터의 심장이 박자를 잃고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모든 것이 악몽이었어요, 미안해요."
피터가 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전에 피터가 퇴근 후 저녁 식사가 끝나면, 소파에 앉아서 핑크 플루이드의 '당신이 내 곁에 있으면 좋겠어요(Wish You Were Here)'와 웨스트 라이프의 '내 사랑(My Love)' 음악을 감상할 때, 수아는 피터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고, 피터는 얼음이 든 위스키나 진홍색의 보르도 와인을 마시며, 눈을 지그시 감고 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었을 때의 정답고, 사랑스러운, 그 부드러운 손길을 다시 느끼니 무척도 행복했다.
수아는 피터와 헤어졌던 10개월 동안 인자하고, 포근하고, 안정감을 주었던 피터와의 지난 28년을 그리워하며 언젠가는 피터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수아와 피터는 달콤한 사모스 와인을 석 잔씩이나 마시고, 술기운이 어지간이 드는 느낌이었다. 자정이 넘어서 레스토랑 주인 빅터가 문을 닫으려고 할 때, 그들은 차를 레스토랑 주차장에 세워놓고, 30분을 공원을 지나서 지름길로 걸어서 집으로 가는 도중, 옛날에 두 사람이 자주 앉았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사춘기 연인같이 서로의 뜨거운 사랑의 키스를 퍼부었다.
피터는 그날 밤에 비안카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두 사람은 쌓였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오랜만에 재회의 회포를 풀었고, 피터는 그날 밤 그 어느 때 보다도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을 선물했다. 오랜만에 피터의 팔베개에 누어 잠이 들 수 있는 수아는 무척도 행복했고,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피터가 그 이튿날, 일찍 비안카의 집에서 짐을 가지고 왔다.
두 사람의 사랑은 예전보다 더 깊어졌고, 모든 지난 일들을 잊기로 했다.
수아는 자신의 외모에 많은 신경을 쓰고, 운동도 했다. 나이 50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은 수아가 아름답다고 했으며, 피터는 자기의 부인이 늘 자랑스러웠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토요일 저녁, 피터와 수아는 정원에서 내일 쥬리에게 가지고 가기 위하여 무화과를 따고 있었다. 그때 피터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비안카인데."
피터가 당황한 모습으로 말했다.
"받아보세요."
수아의 재촉에 피터가 전화를 받았다.
"피터, 급히 할 말이 있으니 만나주세요."
"비안카, 우리가 무슨 할 말이 남았나?"
"네, 중요한 일이니 내일 저녁 7시에 로렐라이(Lorelei) 카페로 꼭 오세요. 기다릴게요."
수아는 비안카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후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쥬리를 방문했다. 쥬리는 나이 28세에도 직장에만 충실했고, 아직도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었다. 병원 인근의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셋이서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고, 쥬리는 일요일 근무라서 병원으로 들어가고, 수아와 피터는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6시가 되어서 수아가 피터에게, "비안카가 무슨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만나보세요."라고 했다. 피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비안카를 만나러 집을 나간 후 수아는 별별 생각을 다했다. 수아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샴페인을 마시며, 음악을 감상했다. 열 시가 되어서 피터가 왔다. 피터가 수아 곁에 앉으며, 탁자에 놓인 샴페인을 글라스에 따라서 성급히 마시며, 몹시 기분 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비안카가 임신을 했데요."
수아는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비안카가 뭐라고요."
"임신을 했데요. 벌써 4개월이래요."
"......."
수아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여보, 진정해요. 비안카가 그 대학교 동기생과 벌써 4개월 넘게 사귀고 있는데, 어쩌면 그 친구의 아이일지도 몰라요."
"꼭 친자관계 검사를 해야겠어요."
"당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피터는 수아의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많은 말을 했지만, 수아는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날 밤, 수아는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튿날 아침, 피터가 비안카에게 친자관계 검사를 제안했다. 비안카는 화가 난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자세히 계산을 해보았는데, 당신 아이가 맞아요." "그렇게 믿지 못하면 맘대로 하세요."
이틀 후에 비안카와 피터는 시립병원 산부인과에서 태아의 양수를 채취하여 친자관계 검사를 의례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일주일이나 걸린다고 했다.

 

드디어 일주일 만에 친자관계 검사 결과 통지서가 왔다. 수아와 피터는 검사 통지서를 뜯으면서 무척 긴장을 했다. '비안카 부인의 태아가 피터 피셔 씨의 친자가 아닐 확률이 99.9%입니다.'라고 통지서에 쓰여 있었다. 수아와 피터는 되찾은 행복이 태아 문제로 큰 상처가 될까 봐 며칠 동안 무척이나 긴장했었다. 비안카도 이 통지서를 받았을 것이며, 그 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생각하면, 무척 괘씸한 일이었다. 피터는 비안카가 처음부터 피터가 태아의 친부가 아님을 짐작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백수가 된 비안카의 새로운 남자 친구와의 사이도 헤어지기 직전이었다. 어쨌든, 이젠 비안카라는 여자와는 모두가 지나간 일로 더 이상은 가슴앓이하지 않기로 했다.

 

피터는 올해 57세다. 피터는 60세가 되면 은퇴를 할 계획을 하고, 우선은 하루 5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줄였다. 수아는 정원일을 하고, 분재도 가꾸었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자주 등산도 하고, 짧은 여행도 하며, 무척 만족하고 행복한 노년의 삶을 누렸다.

 

수아의 병실 칸막이 커튼 뒤에 어제저녁에 입원한 젊은 교통사고 환자가 밤을 넘기지 못하고, 슬픈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떠났다. 가족들의 슬픈 통곡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게다가 밤새도록 창문을 두드리는 궂은비가 우울한 수아를 더욱 괴롭혔고, 공포와 슬픔에 출렁이는 감정을 달래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오늘은 수아의 온몸이 불덩이 같이 열이 나고, 몸에 무슨 변화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흐르는 땀으로 두 눈이 몹시 쓰리다. 누가 얼굴에 땀이라도 씻어주었으면 좋겠는데, 리거 간호사가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수아는 이러다가 정말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과, 억누를 수 없는 공포에 떨리기만 했고, 심장도, 맥박도 질서 없이 뛰고 있었다. 머리 위 벽에 걸려있는 모니터가 요란하게 알람을 울렸다. 리거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서 모니터를 점검했다.
"맥박이 140, 혈압이 180/100이나 되네요. 빨리 의사 선생님께 보고하겠어요."

 

잠시 후에 마이어 박사가 와서 청진기로 수아를 진찰하고, 리거 간호사가 체온 검사를 했다.
"체온이 39°C에요."
"리거 간호사, 폐렴이에요. 우선 빨리 채혈을 해서 염증 수치(Leukozyten, CRP) 검사를 하고, 항생제 투여가 필요해요. 아목시실린(Amoxicillin) 1000mg을 여덟 시간 간격으로 정맥 투여하세요."
마이어 박사와 리거 간호사가 빠른 걸음으로 서둘러서 병실 문을 나갔다.

 

잠시 후에 리거 간호사가 채혈을 하고 조그만 유리병의 아목시실린 링거를 꼽고 수아의 얼굴에 땀을 닦아주었다. 이젠 살 것만 같다. 또다시 억지할 수 없는 잠이 오고 수아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추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2003년 8월 14일, 목요일,
내일은 피터의 60세 생일이다.
수아는 피터의 생일 준비에 바빴다.
파티 서비스에 주문한 음식과 와인은 내일 배달하기로 했다. 넓은 정원에는 여러 개의 하얀 식탁보가 씌워진 둥근 식탁이 놓이고, 각 식탁에는 각색의 장미 꽃꽂이를 하기로 했다.

 

피터가 오늘 아침 출근을 하기 전에 몹시도 상쾌한 기분이었고, 수아에게 9월 초에 드디어 기다리던 은퇴를 하기로 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여보, 우리 이제부터 하고 싶었던 일도 하고, 가고 싶었던 곳에 여행도 해요." "우선 폭염이 지나고 시원한 가을이 오면 프랑스 지중해의 론(Rohne)의 프로방스(Provance)로 여행을 갑시다."
"환상적인 보랏빛의 라벤더(Lavender) 벌판에서 산책도 하고, 그곳에서 빨갛다 못해 검은 감미로운 보르도(Bordeaux) 와인도 마십시다."
"사실이에요? 너무도 기쁜 소식인데요."
수아는 오래전부터 피터의 은퇴를 손꼽아 기다렸다.
지난해 여름 호두나무 그늘 및 라벤더 밭둑에 넓은 돗자리를 펴고, 보르도 와인을 마시며, 한나절을 보냈던 그때가 별안간 그리웠다.

 

무더운 오후 수아가 정원에서 꽃꽂이를 하기 위하여 장미꽃을 꺾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려왔다. 올리버 슐츠 변호사다.
"수아 씨, 빨리 시립병원으로 가요. 피터가 쓰러져서 응급차에 실려갔어요."
"올리버, 그게 무슨 말이에요. 피터가... 뭐라고요.... 쓰러졌다고요."
수아는 서둘러서 시립병원으로 차를 달렸다. 제발 피터가 무사하기를 바랐다.

 

"간호사 선생님, 피터 피셔 환자가 어디 있나요. 제가 부인인데요."
응급실에 도착해서 간호사에게 피터가 어디 있는지 성급하게 물었다.
"잠깐만요 사모님, 제가 의사 선생님을 모시고 올게요."
간호사의 대답이 시원치가 않았다.
얼마 후에 닥터가 수아에게 다가왔다.
"의사 선생님, 우리 아이 아빠는 어디 계셔요?"
수아가 재촉을 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심폐소생술(Reanimation/Cardiopulmonary resuscitation/CPR)을 20분이나 했으나 피셔 변호사님은 기어코 돌아가셨습니다."
의사가 수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아이 아빠가 죽다니요?"
수아는 의자에 펄썩 주저앉았다. 꼭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의사가 수아를 피터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제야 두 눈으로 피터의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 정말로 피터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느꼈지만, 그래도 피터가 당장이라도 눈을 뜰 것만 같았다.
"여보, 이렇게 떠나가면 난 어쩌란 말이에요. 너무해요. 정말로 너무해요." "내일 당신의 60세 생일파티를 준비했는데, 이렇게 가시다니요."
수아는 피터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고 나서 쥬리에게 전화를 했다.
쥬리가 하이델베르크에서 서둘러서 달려왔다.
"엄마 아빠가 또 쓰러지셨어? 이젠 좀 어떠세요?"
"쥬리야, 아빠가 되돌아오지 못하셨단다."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쥬리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다.
"아빠, 아빠 눈 좀 떠봐요. 아빠!"
"아빠, 안 돼요. 안 돼요. 이렇게 가시면 안 돼요."
쥬리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수아도 쥬리를 끌어안고, 통곡을 하며, 소리 내어 울었다.
모녀는 피터가 시신 안치실로 옮겨 가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올리버 슐츠 변호사가 왔다.
"수아 씨도, 쥬리도 이젠 좀 눈을 붙여요. 장례식 준비는 내가 피터가 늘 원했던 대로 할게요."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으니 슐츠 변호사가 장례식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맡아서 했고, 내일 피터의 60세 생일 파티에 초대받은 손님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했다. 60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죽다니 어쩌면 이렇게 기구한 운명이란 말인가?
그날 밤 쥬리와 수아는 진정제를 먹고 간신히 잠이 들었다.

 

삼 일 후에 피터가 늘 원했던 대로 간단한 장례식을 치렀다. 수아와 쥬리와 올리버 슐츠 부부 그리고 피터의 두 친구만을 장례식에 초대했다. 피터의 유골이 한 줌의 재가 되어 담긴 청색의 자그마한 단지가 땅속에 묻히고 흙으로 덮일 때, 수아도 같이 묻히고 싶었다. 수아는 피터의 묘소에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놓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작별의 인사를 했다.
"여보, 고마웠어요. 다시 만나는 날까지 편히 쉬세요."

 

피터가 없는 큰 집에는 늘 슬펐고, 수아는 우울증에 휩싸였다. 그저 앞날이 뭉게구름처럼 캄캄하기만 했다.
다행히도 쥬리가 하이델베르크 병원에서 이곳 시립병원으로 직장을 옮기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럭저럭 산 사람들은 살게 마련인가 보다. 쥬리와 수아는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의 삶을 지속했다.

 

2004년 5월 15일 토요일,
피터가 떠난 지 어느덧 9개월이 되었다. 칠월이면 쥬리는 32세다. 수아는 쥬리가 좋은 신랑감을 만나서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나 쥬리는 자기의 직업에만 온 정성을 쏟고 있었다.
수아는 쥬리가 나이가 들 수록 쥬리에 대한 죄의식이 자주 자신을 괴롭혔다. 어쩌면 진작에 쥬리에게 생부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을 해 주었어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피터는 절대로 반대였다. 피터는 누가 뭐래도 쥬리는 자기의 딸이라고, 사실을 말하지 못하게 했었다.

 

이제 와서 쥬리에게 사실을 고백하기에는 자신도 없었고, 용기도 나지 않았으며, 피터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수아는 테라스에서 유서를 썼다. 그 유서 속에 쥬리의 생부에 대한 사실을 적었다. 수아가 죽은 후에라도 쥬리가 생부가 누군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이미 때가 늦었겠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아는 유서를 책상 서랍에 넣고 자물쇠로 잠그었다.

 

그날은 오월다운 화창한 봄날이었다. 수아는 피터의 묘소에 가지고 갈 꽃을 꺾기 위해 가위와 바구니를 들고 정원으로 가서 빨갛고 노란 튤립을 자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수아의 주위의 모든 것이 빙빙 도는 어지러움과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가슴이 몹시 아파서 땅에 쓰러졌었다. 수아의 머릿속에는 그때의 일들이 번개같이 스쳐갔다.

 

"잠깐만!"
"그렇지!"
수아에게 거기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때 수아가 쓰러졌을 때 의식을 잃은 것이 분명했고, 그때 병원에 입원을 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리거 간호사와 닥터 마이어가 수아의 환자방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민수아 여사님, 잘 주무셨어요?"
리거 간호사가 체온을 점검하고,
닥터 마이어가 모니터를 검토하고, 청진기로 진찰을 한다.
"폐렴 상태가 생각보다 빨리 호전되고 있군요."
닥터 마이어가 흐뭇한 표정으로 리거 간호사를 바라본다. 마이어 박사가 수아의 발바닥을 간질인다. 수아의 척추와 뇌의 기능을 검사하는 바빈스키 반사 테스트(Babinski-Reflex-Test)이다. 그러나 수아는 그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리거 간호사가 수아를 씻겨주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새로운 링거를 꼽아준다. 그리고 수아의 아침 식사인 하얀 흰 죽이 담긴 링거병을 위장 음식 공급 튜브(PEG Sonde) 줄에 꼽아준다. 수아가 링거병의 에티케트를 읽는다. 또 종합비타민(Multivitamin)이다.
찐한 아라비카 커피가 마시고 싶고, 딸기쨈이 듬뿍 발린 토스트도 먹고 싶다. 옛날에 수아와 피터는 아침에 늘 아라비카 찐한 커피와 딸기 쨈이 듬뿍 발린 토스트나 빵을 먹었다.
그러나 설사 빵과 커피가 제공되어도, 수아는 먹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 세월은 바람 따라, 강물 따라, 구름 따라 빨리도 흘렀다. 이젠 아무런 저항의 여지도 없이 삶의 종점에서 인생의 마지막 여정의 길를 떠나야 하는가? 내가 또다시 이 병상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왜 아무도 내가 볼 수도 들을 수도 있음을 모르는가? 모든 코마 환자를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식물인간으로 점을 찍고 조그만 병실에 방치하고 간신히 목숨을 연장하는 기본 치료인 영양제 링거와 하얀 영양분을 음식 튜브로 공급한다.

 

수아는 또다시 자기가 살아온 54년 동안의 삶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모두가 어제만 같이 기억에 생생하다.
민수아! 꼭 남의 이름만 같았고 그 민수아가 살아온 54년 인생이 꼭 남의 삶과 같이만 느껴지고 지금 이곳에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민수아의 삶이 아니었다.
수아는 또 회오리바람과 같은 환상의 터널 속에 빨려 든다.

 

1950년 10월 10일 화요일,
수아는 쌀과 도자기로 유명한 아름다운 도시 이천에서 민광식 군수의 맏딸로 태어나서 옥이야 금이야 곱게 자랐다. 수아의 밑으로는 남동생 성호와 여동생 수미가 있었다.

 

1971년 간호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구 영지와 이천 보건소에 취직을 하여 사회에 첫걸음마를 했다.
수아가 지금 생각하니 그때가 꿈 많고 아름다운 수아의 전성시대였다.

 

그해 여름,
유월 내내 장마가 계속되더니 이젠 무더운 폭염이 견디기 힘들 만큼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찌는 더위다.
오늘도 수아는 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준 아침밥상도 거들떠보지 않고 근무 길로 서둘렀다. 아침 햇살이 이슬에 젖은 미루나무 잎사귀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빛나는 거리를 지나 작은 실개천 다리를 건너 보건소로 향하였다. 밤사이에 내리다 마다한 비는 땅도 적시지 못했다.

 

민수아와 친구 송영지가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이천 보건소 결핵 관리원 공무원으로 근무를 시작 한지 5개월이 되었다.
근무가 시작된 첫날, 정태우 방역계장은 두 사람에게 결핵관리원으로서의 임무와 과제를 설명했다.
"지난 두 해는 콜레라 에피데미가 전국을 강타하여 혼란스러웠고 보건소에는 매일 비상상태였어요."
"올해는 결핵 예방주사와 소아마비, 홍역 예방주사로 좀 바쁘군요."

 

보건소 방역계의 20평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사무실에는 방역계장 정태우와 수아와 영지 그리고 이화자 간호사와 네 명이 같이 쓰고 있었다.
선배 이화자 간호사는 이미 결혼을 한 한 아이의 엄마였다.

 

결핵 관리원들은 매일 결핵환자 발견을 위해서 주민들의 가래 수집을 하고 예방접종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수아는 보건소에서 오늘도 방역계장 정태우에게 핀잔을 받고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정태우는 수아의 관심을 사려고 수아의 근무 첫날부터 애를 쓰더니 자기 맘대로 되지 않으니 이젠 상사로서 당연하다는 듯 될 수 있으면 수아를 괴롭히려고 애를 썼다.

 

오늘은 설봉 국민학교에 영지와 수아의 담당으로 예방접종을 하러 가는 날이다. 아침 8시 근무가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 정 계장이 영지를 사무실로 불렀다.
"송 간호사, 지난 마을 주민 가래검사에서 주무리 이순애 아주머니가 결핵환자로 발견되었어요. 그 아주머니에게 가서 보건소에 X-Ray 도 찍고 약도 타러 오라고 전해줘요."
정 계장이 지시를 했다.
"아 계장님, 오늘은 국민학교 예방접종 날이잖아요."
영지가 정 계장에게 말했다.
"송 간호사, 내가 말하는 대로 하세요. 예방주사는 민 간호사 혼자서도 충분해요."
정 계장이 언성을 높였다.
"정 계장님, 그건 말도 안 돼요. 2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저 혼자서 어떻게...."
수아의 말도 끝나기 전에 정 계장이 말을 가로챘다.
"민 간호사, 왜 그렇게 불만이 많아요. 싫으면 직장을 그만두던가"
"안 기사가 차를 대기하고 있으니 빨리 서둘러요."
정 계장이 눈을 부릅뜨고 명령을 하듯 큰소리로 말했다.

 

영지는 서둘러서 주무리로 출장을 가고, 수아는 치미는 분노에 모든 것을 팽개 치고 싶었으나, 꾹 참고 냉장고에서 백신 박스를 꺼내 들고, 가운을 챙겨서 차에 올랐다.

 

안 기사는 몇 달 전에 유니세프(Unicef)에서 보건소에 기증한 짚(Jeep) 차의 기사로 채용 된 조용하고 품격이 있는 두 아이의 아빠였다.
"안 기사, 빨리 가지 뭐해요."
정 계장이 재촉을 했다.

 

정 계장은 40이 넘은 자기 말로는 노총각이라고 하는데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오랫동안 한 여성과 동거를 하다가 헤어졌다고 한다. 매일 머리에 포마도를 기름이 짜르르르 흐르도록 바르고 잘난 척이나 하는 겉만 번지르하고 속이 텅 빈 교양이 없는 카사노바였다. 수아는 늘 정직하고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정 계장과 같은 남자들은 질색이었다.
수아는 언젠가는 그 못된 정 계장에게 복수를 할 날이 꼭 올 것이라고 믿었다. 수아는 자신의 힘으로 복수가 불가능하다면 아버지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정 계장을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던지 그렇지 않으면 아주 잘라버리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보건소에서는 영지 외에는 수아가 군수 민광식의 맏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예전에는 정 계장이 예방접종 때는 간식과 음료수도 종종 챙겨 주고 많이 도왔는데 오늘은 정 태우가 하루 종일 지시만 하고 2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의 예방주사를 수아에게 맡기고 참견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일 학년 담임을 맡은 주성미 선생님이 옆에서 학생들의 소매를 올려주고 팔도 잡아주었다. 그리고 주사에 겁을 먹은 아이들을 위로했다.
정 계장은 안 기사와 학교 운동장 플라타너스 그늘 밑에 주차해 놓고 차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수아는 퇴근길에 사촌오빠 강호라도 만나서 기분전환을 하려고 큰댁에 들렸다. 강호는 수아에게 친오빠와 같았고 강호에게는 모든 근심 걱정도 털어놓을 수가 있었다. 강호는 수아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했고 수아를 친동생 이상으로 아껴주었다.
"수아야, 오랜만이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니? 표정이 왜 그래."
강호가 물었다.
"아참 수아야 인사해, 내 대학 동기 민수야. 민수야 내 사촌동생 수아야"
수아는 자기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김민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김민수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 네, 민수아입니다"
수아는 별안간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 생전 처음 만난 김민수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얼굴에 아주 친절한 인상이었다.
"오빠 나 다음에 올게"
수아가 돌아서서 가려고 하자
"저도 방금 가려던 참이었는데 같이 가시지요"
민수가 수아의 뒤를 따라 나왔다. 중앙 버스정류장에서 민수는 버스를 타고 춘천 부대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지요."
민수가 인사를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수아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전신이 마비가 된 것만 같았다.
"아.. 네.. 안녕히 가세요."
수아가 말을 더듬었다.
수아는 민수가 그냥 떠나가 버린 것이 왠지 아쉬웠다

수아가 민수를 기억에서 지우려고 애쓰던 이주일 후에 뜻밖에도 김민수가 긴 사랑의 고백의 편지를 보냈다. 김민수도 수아와 같이 처음 보는 순간에 수아의 수줍고 귀여운 모습에 호감을 가졌던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뵌 후로 수아 씨의 얼굴이 머릿속에 자꾸 떠 올라서 강호에게 수아 씨의 주소를 물어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이 글을 드립니다. 이 무더위에 잘 지내시나요? 수아 씨와 다시 한번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제가 돌아오는 토요일에 휴가를 내어 은하 다방에서 저녁 5시에 기다리겠습니다. 꼭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더위에 건강하시고 만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이날같이 행복한 날이 수아가 21세가 되도록 없었던 것 같았다. 그날 밤은 민수와 만나는 그 장면을 그리면서 밤새도록 잠을 설치고 말았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고 2개월이 지난 지금은 서로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아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정 계장의 수아에 대한 못된 태도는 날이 갈수록 심했다.

8월 8일, 기다리던 일요일이다. 수아가 즐겨서 찾는 은하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며 영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한 시에 영지가 왔다. 수아와 영지는 책상에 놓여있는 조선일보에 '대한 해외개발공사'에서 독일에 파견할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발견했다.
1959년 서독으로 유학을 갔던 현재 소아과 의사로 서독에 마인츠(Mainz) 시 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이수길 박사가 독일 정부와 한국 간호사 파견을 협상 완성시켜서 1966년부터 파견시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여태껏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수아와 영지는 이제 실제로 신문 광고를 보니 꼭 지원하고 싶었다.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수아와 영지는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가 않았고 수아는 기어코 그 못된 정태우에게 보복을 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월요일 서둘러서 지원서를 내기로 했으나 2년 이상의 경력증명서가 필요했다. 수아와 영지가 보건소에 근무를 시작한 지는 겨우 5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1971년 8월 9일 월요일,
수아와 영지는 생각 끝에 정 계장이 출장을 간 틈을 타서 유준서 보건소장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유 소장님, 저희들이 부탁을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수아가 간신히 말을 꺼냈다.
"어 웬일들이야! 나는 두 사람이 정 계장과 출장을 갔는 줄 알았는데."
유 소장이 말했다.
"아 나 마침 점심식사하러 갈려고 했는데 같이 갈까. 점심은 내가 살게." 유 소장이 서둘러 나가면서 두 사람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세 사람은 상해 중화반점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그래 부탁하고 싶은 게 뭐였지?"
유 소장이 짜장면을 씹으면서 물었다.
"네 소장님 다름이 아니고 저희들이 파독 간호사로 지원을 하려고 하는데 2년의 경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저희들은 근무경력이 5개월밖에 되지 않아서요"
수아가 말을 더듬었다.
"그래요 소장님 2년 경력서에 사인 좀 해주시겠어요."
영지도 말을 덧붙였다.
"허 그게 다야. 난 또 뭐라고. 그거 뭐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런데 언제 떠나게 되는데?"
유 소장이 물었다.


"10월 초예요."
수아와 영지가 동시에 대답을 했다.
"그렇게 빨리, 요즈음 결핵환자가 늘고 예방접종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그럼 빨리 새로운 직원을 구해야지." 유 소장이 걱정이 되는 듯 말했다.
"유 소장님, 걱정 마세요. 저희들 학교 동창들이 보건소에 취직을 하고 싶어 하는 애들이 많아요."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을 했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보건소에 돌아온 후 정 계장이 오기 전에 두 사람은 유 소장에게 경력증명서에 직인을 받았다.

 

그 이튿날 오후 휴가를 내어서 그들은 즉시 서울에 올라가서 해외개발공사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해외개발공사 접수처 직원의 말로는 경쟁률이 5대 1이라고 했다. 그리고 1963년에 파독한 광부 500명 모집에 4만 명이 넘게 지원을 했다고 했다. 수아와 영지는 그 직원이 허풍을 떤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허풍이 아니었다. 광부 500명 모집에 4만 6000명이 지원을 했다고 한다. 그 당시 한국에는 급속으로 증가되는 인구로 인하여 그리고 주로 70 퍼센트가 농업이 생업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실업률 또한 증가되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젊은 남성들이 심지어는 유부남의 자녀를 둔 아기 아빠들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돈을 벌기 위하여 사랑하는 가족들과 3년이라는 짧지만은 않은 이별을 하고 광부로 파독하였다.
수아와 영지는 혹시 낙선이 될지도 몰라서 해외개발공사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사직서를 내지 않기로 했다.

일주일 후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라는, 그리고 몇 주에 걸친 독일어 강습을 받으라는 소식이 왔다.
수아와 영지는 오늘은 꼭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보 많이 드세요. 오늘은 30도가 넘었다네요. 수아도 많이 먹어."
수아 엄마가 삼계탕을 저녁 식탁에 차리며 말했다.
"엄마, 아버지! 나 독일 가면 안될까요. 영지도 간다는데요."
수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얘는 독일은! 이제서 보건소에 취직을 했는데."
엄마가 당치도 않다는 듯 말씀하셨다.
"안돼, 독일이 어디라고."
아버지도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엄마! 사실은 나 벌써 지원 신청했어요. 다음 주일에 건강검진하고 독일어 강습도 시작해요."
수아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수아야 너는 왜 항상 엄마, 아버지에게 묻지도 않고 결정을 짓니? 독일이 어디라고 그 먼 곳을...."
엄마가 당치도 않다는 듯 나무라셨다.
"기한이 3년이라고? 좀 길기는 하지만 경험도 할 겸 그리고 아직 어리니까 괜찮다."
아버지가 말씀 하셨다.
"영지라도 같이 가니 다행이구나."
하시며 엄마도 허락을 했다는 듯 말씀 하셨다.
"민수도 아니?"
엄마가 물으셨다.
"응 엄마 민수 오빠도 2년은 더 있어야 제대를 하잖아."

수아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영지의 부모님은 영지의 파독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영지는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수아와 영지는 국립의료원에서 건강검진도 받고 해외개발공사에서 독일어 강습도 받았다.

 

파독을 삼주일 앞두고 영지가 밤 열 시가 넘어서 수아를 찾아왔다. 영지에게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음이 그의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영지야 들어와 너 이 밤중에 웬일이야." 수아가 물었다.
"수아야 미안해, 나말야..." 영지가 하던 말을 멈추었다.
"영지야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수아가 언성을 높이며 영지를 나무랬다.
"수아야!"
"그래 영지야, 너의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
"아니아 수아야, 그런 게 아니고, 나... 나 결혼하게 됐어."
"영지야, 너는 참, 계집애도 농담도 분수가 있지 결혼은 애인도 없는 게 별안간 무슨 결혼이니." 수아가 깔깔대고 웃었다.
"이 계집애야 내가 지금 농담하게 생겼니? 나 결혼한다고!" 영지가 화를 내며 말했다.
수아는 영지의 말이 농담이 아님을 깨닫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아야 너 내가 방학 때 아르바이트하던 여주병원 알지?"
"응, 그런데."
"병원 사모님 동생이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왔는데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대.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께 청혼을 했어."
"그래서 영지야. 너 뭐라고 했어?"
"우리 엄마가 가문도 좋고 훌륭한 신랑감이라고 좋다고 했대."
"영지야! 그래도 네가 싫으면 그만이잖아" 수아가 영지를 나무랬다.
"수아야. 나도 그 사모님 동생을 예전에 몇 번 본 적이 있어, 그런데 사람이 괜찮아 보여."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독일에 가는 것을 반대를 하니 그냥 결혼이나 할래."

 

영지의 신랑감은 27살이었으며 약대를 졸업하고 ROTC로 입대하여 중위로 제대했다. 수아는 어쩌면 영지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아는 영지가 이미 결혼을 결심했다는 것을 느꼈다.
수아는 왠지 영지가 부러웠다.
"영지야, 이 계집애야! 어떻게 나 혼자서 독일을 가란 말이야."
수아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수아야, 그까짓 3년은 금방이지 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 뭐."
영지가 수아를 끌어안고 미안하다는 듯 위로를 했다.
"그래 영지야, 결혼해서 행복해야 돼."

 

그날 밤은 영지가 수아네 집에서 자기로 했다.
거의 밤이 샐 무렵까지 두 사람은 울고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영지야, 나도 그냥 결혼이나 해 버릴까? 아니야! 민수 오빠는 이제서 25살이야, 그리고 아직도 2년이나 더 군대생활을 해야 돼." 수아가 기운 없이 말했다.

수아와 민수는 아직은 결혼을 할 나이도 아니었고 그리고 민수의 2년 병역복무가 남았다. 두 사람은 수아가 3년 후에 돌아오면 결혼하기 딱 알맞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1971년 9월 14일, 화요일.
오늘은 민수가 이틀 휴가를 받아서 수아가 독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이다.
수아는 퇴직을 하고 독일어 강습을 받고 있었다. 학원에서 나와서 을지로 6가에 있는 계림극장에 오후 5분 전 5시에 도착했다.

 

그때, "수아야! 여기야, 여기." 하면서 민수가 맞은편에서 다가왔다. 민수가 수아의 볼을 어루만지며, "수아야 잘 지냈어?" 하고 물었다.
"응 오빠, 오빠도 건강하지?"
민수는 빨간 꽃무늬의 짧은 원피스에 하얀 샌들을 신고 있는 수아를 훑어 보면서,
'수아가 오늘따라 더 예쁜데." 하고 말했다.
민수는 오늘따라 더 멋있어 보였다.
수아는 늘 장교 출신인 자기의 멋있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으며 친구들도 멋진 수아의 아버지를 부러워했다. 수아는 꼭 아버지와 같은 남자와 결혼을 할 것이라고 결심했고 민수가 바로 그런 남자라고 믿었다.

두 사람은 신당동 작은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장충단 공원과 약수터를 지나서 남산의 명소 팔각정까지 걸었다.
두 사람은 팔각정 층계에 앉아서 찬란하게 펼쳐있는 서울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너무나도 황홀한 전경이었다. 남산 곳곳에서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정겨운 속삭임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1969년 패티 김의 히트곡인 '서울의 찬가'를 불렀다.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두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나니 기분이 좋았지만 이별이라는 그 두 글자가 머릿속에 가끔 떠오를 때마다 왠지 서글펐다.


밤이 깊어가니 바람이 차가웠다.
"수아야 춥지?" 민수가 군복 윗도리를 벗어서 수아의 어깨에 걸쳐주면서 수아를 끌어안았다.

그들은 손을 꼭 잡고 남산을 내려갔다.
갑자기 민수가 "잠깐만"하면서 수아의 손을 놓고 길가에 피어있는 하얀 클로버 꽃을 따서 수아의 머리에 꼽아주었다.
"수아야 사랑해." 민수가 수아의 얼굴에 흩어진 긴 검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수아의 얼굴을 자기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다시 두 손으로 수아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들어서 수아의 새빨간 입술을 자기의 뜨거운 입술로 덮었다.
이  순간이 수아는 너무도 행복했고 아무런 저항도 하고 싶지 않았다.
"수아야 날 잊으면 안 돼"
"오빠, 난 오빠뿐이야."
두 사람은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며 어느새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있었다.
"수아야, 우리 오늘 밤을 같이 지내면 어떻겠니?"
수아는 민수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두사람은 인근의 여관으로 갔다. 두 사람은 왠지 서로에게 쑥스러운 마음이었다. 수아와 민수는 서로 할 이야기가 많았다.

 

그 이튿날 1971년 9월 15일, 수요일,
찬란한 태양이 어느새 밝아오고 있었다. 수아가 잠이 깨어 옆에 아직도 잠들어있는 민수를 보고 잠시 깜짝 놀랐다. 수아는 조용히 일어나서 욕실로 갔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이 왠지 서글퍼 보였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수아는 오래전부터 자기는 민수의 여자였고 언젠가는 민수의 아내가 되어 민수의 아이를 낳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젠 정말로 민수의 여자가 되었음을 절실히 느꼈다.

두 사람은 여관에서 나와서 자그마한 국밥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민수가 군대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쓰리고 아픈 작별을 해야만 했다.


"수아야, 사랑해. 가서 건강 조심하고 편지 자주 보내줘." 민수가 수아의 손을 꼭 눌러 쥐면서 말했다.
" 오빠도..." 수아의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민수가 손을 흔들며 버스에 올랐다. 수아도 손을 흔들며 민수를 배웅했다.
"오빠 잘 가. 그리고 사랑해." 수아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버스는 보이지 않는데도 멍하니 정신 나간 사람같이 계속 손을 흔들며 서있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이젠 수아는 완전히 민수의 여자가 되고 말았다.

 

1971년 10월 5일, 화요일,
수아는 부모님과 영지와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에 갔다.
"제발 독일에서 몸조심하고 밥 잘 챙겨 먹어라."
수아의 어머니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했다.
"편지 자주 해라."
아버지도 말씀을 덧붙였다.
수아의 부모님은 벌써 50이 넘었으며 뒤늦게 수아를 낳고 수아를 금이야 옥이야 키웠으니 그 이별의 슬픔은 컸다. 그래도 그들은 수아의 그 희망과 꿈을 펼치게 하는 것이 수아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수아야 3년은 빨리 갈거야."
영지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영지야 네 결혼식에 참석을 못해서 미안해, 행복해야 돼." 수아가 영지를 끌어안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포 비행장에는 150여 명이 넘는 간호사들이 화려한 한복을 입었거나 수아와 같이 짧은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아름다운 우리 조국의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사랑하는 딸, 형제, 친구들 그리고 아내를 배웅하려는 사람들이 인산, 인해를 이루었다. 그 당시에는 외국에 간다는 것은 드문 일이었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마지막 이별이라도 되는 듯 눈물을 흘렸다. 엄마도 눈물을 흘리셨고 영지도 울었다.

"수아야, 가서 곧 편지해라. 알았지."
수아의 엄마가 수아의 등을 토닥이며 말씀하셨다. 수아의 엄마는 그 언제나 가슴으로는 울어도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는 대단히 강한 엄마였다.
'응 엄마."
수아가 비행 대기실로 들어가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간호사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그때 히트곡이었던 김하정의 '사랑'과 1968년 이미자의 히트곡인 '서울이여 안녕' 노래를 부르며 서독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수아도 그 슬픈 '백의의 천사' 김하정의 '사랑' 노래를 부르며 비행기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사랑이란 슬픈 길을 알고 왔어도 젊음의 꽃밭에는 찬비만 내려 운명이라 달래 보는 백의의 천사'
수아는 이 노래가 꼭 자신의 운명인 것 같았다.


간호사들 중에는 남편과 어린 자녀들을 두고 떠나는 기혼녀가 많았다. 수아의 옆자리에 앉은 권정희 간호사는 겨우 백일이 지난 아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실업자인 남편을 대신해서 서독으로 돈을 벌러 간다고 했다. 수아는 그들의 슬픈 마음은 오죽할까 생각을 했다.

수아는 막상 비행기가 이륙하자 쏟아지는 눈물을 금하기가 힘들었다. 다시는 이 정든 땅을 밟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심장이 박자를 잃고 마구 뛰고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이 길이 과연 현명한 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옆 좌석의 권정희 간호사는 자주 창밖을 내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시골에서 논 열 마지기 농사를 짓는 시부모가 외아들인 남편의 학비를 대느라고 빗을 산더미같이 지고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였으나 직장을 얻지 못하고 3년째 백수로 우울증에 휩싸여 목숨까지 끊으려고 했었다고 했다. 남편이 파독 광부로 지원을 하려고 했으나 시부모님이 외아들이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아서 자신이 지원을 했다고 말했다.

비행기는 돌고 돌아 오랜 시간 후에 알래스카 앵커리지(Alaska Anchorage)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 당시에는 냉전 시대라서 소련과 중국이 서방세계 항공사에 영공을 개방치 않아서 북극 항공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앵커리지에서 연료를 급유하거나 승무원 교체를 하는 중간 기착지로 이용되었다. 모든 승객들은 공항 보세구역으로 안내가 되었고 그곳에서 휴식과 쇼핑이 가능했지만 공항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었다.
수아는 알래스카에서 휴식을 하는 동안 권정희 간호사와 쇼핑을 했다. 알래스카에는 옥으로 된 연초록의 예쁜 장식품이 많았다. 알라스카의 여인들은 거의가 작은 키로서 원래 수아의 작은 키 보다도 더 작았다.

거의 17시간의 비행 후 밤 10시경에 독일 쾰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독일 각도시의 병원 측에서는 한국에서 온 간호사들을 마중 나왔다. 권정희 간호사는 프랑크푸르트 대학병원으로 배치되었다. 그동안 왠지 정이 들었고 헤어지기 힘들었지만 언젠가는 독일 땅에서 만날 것이라고 믿었다.
키가 큰 나이가 든 남자와 칼스루에 시립병원 원장이 민수아와 정미자의 이름이 적힌 피켓(Picket)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자,
"어서 오세요. 나는 엘리자베스 하겐(Elisabeth Hagen) 원장이에요." 하면서 나이 육십은 되어 보이는 수녀복을 입은 여원장이 우리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나이가 든 키가 큰 남자는 그날 운전을 하고 온 병원 행정과 직원 하랄드 융(Harald Jung)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수아는 나이가 든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이름과 성까지 대면서 깍듯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과연 독일인 답다고 생각했다.


정미자는 충청북도 음성이 고향이었으며 수아보다 두 살이 더 많았고 무척 조용하고 믿음직해 보였다.
새벽이 되어서 그들은 병원 기숙사에 도착했다.
하겐 원장이 기숙사 방과 화장실을 가르쳐주고 기숙사 공동 주방 냉장고에는 음료수가 있고 커피나 차도 있으니 필요할 때 사용하라고 했다. 그리고 배가 고프냐고 물었다. 수아와 미자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저녁식사를 해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잘들 자요. 내일은 늦게 일어나도 되니 아침 8시에 데리러 올게요." 하면서 돌아갔다.
수아의 방은 미자의 방의 건너편에 있었다. 기숙사 방에는 책상과 의자와 장롱과 침대가 놓여있었고 욕실에는 샤워와 세면대와 그위에는 큰 거울이 걸려있었다. 기숙사 복도에는 가끔 코가 큰 수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수아와 미자는 오늘은 같이 한방에서 자기로 했다.

 

"엄마! 나왔어."
오랫동안 환상에 젖어있던 수아는 갑자기 병실로 들어서는 쥬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쥬리가 수아의 뺨에 키스를 하고 뺨을 어루만진다.
수아는 쥬리의 따스한 손길을 느꼈다. 그리고 쥬리가 늘 사용하는 가브리엘라 사바티니(Gabriela Sabatini) 향수의 은은한 향기가 풍겨왔다. 무척도 산뜻한 기분이다.
쥬리가 음악을 틀었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id)의 '네가 여기 있으면 좋겠다(Wish You Were Here)'가 조용히 병실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피터와 수아는 저녁이면 텔레비전보다는 넓은 소파에 앉아서 진홍색의 보르도 와인을 마시며 이 음악을 들었다. 피터는 이 음악을 들을 때면 눈을 지긋이 감고 소파에 기대어 자기 무릎에 누운 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와인을 마시며 음악을 감상했다.
피터가 너무나 좋아했던 음악이다. 수아는 피터가 지금 곁에 있는 것만 같았다.

 

"피터! 피터!"
수아가 피터를 불렀다.
이 순간 쥬리가 수아를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며
"엄마! 엄마! 지금 엄마가 아빠를 불렀지?"
"엄마, 엄마가 지금 말을 했지,
그렇지 엄마?"
쥬리가 서둘러서 간호사 호출 벨을 눌렀다.
"쥬리야! 쥬리야!"
"엄마! 나야. 나 쥬리야."
쥬리가 수아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세요?"
금시 나타난 간호사가 물었다.
"저의 엄마가 방금 말씀을 하셨어요."

"민수아 여사님 제 말씀이 들리시나요?"
간호사가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 수아에게 물었다.
"네"
수아가 대답을 하자마자 간호사가 뛰어나가서 닥터 마이어를 데리고 왔다.
"민 여사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민수아"


수아가 간신히 이름은 말했지만 더 이상은 힘들었다.

마이어 박사가 그 이튿날부터 집중적인 물리치료(Physiotherapie)와 언어치료(Ergotherapie)를 지시했다.
하루에 두 번씩 물리치료와 언어치료가 있었고 수아의 팔, 다리에는 점점 감각이 되돌아왔고 곧 물도 마실 수가 있었고 죽도 먹기 시작했다.

수아는 중환자실에서 퇴원을 하고 독일에서 유명한 랑엔슈타인바흐(Langensteinbach)의 건강 복귀를 위한 재활병원( Rehabilitatiosklinik)으로 옮겨졌다.
수아는 매일 열심히 걸음마를 배우고 수영 운동과 언어치료를 했다.
수아는 곧 혼자서 걷게 되고 언어도 거의가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2004년 10월,
수아가 거의 5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젊은 낯선 여인이 주방에서 점심 요리를 하고 있었다.
"엄마, 오늘부터 베르거(Berger) 아주머니가 매일 엄마를 돌볼 거야."
"안녕하세요. 사비네 베르거(Sabine Berger)예요. 그냥 사비네라고 부르세요. 이렇게 퇴원을 하셔서 다행이에요."
"네 사비네, 이렇게 도와주시니 고마워요."
사비네가 쥬리의 지시로 수아가 좋아하는 양고기 스테크와 감자튀김 그리고 마요네즈 드레싱의 양배추 샐러드로 점심상을 차렸다.

 

수아는 양고기 스테크와 감자튀김을 먹으며 수아가 50세 되던 저녁 피터가 비안카에게서 돌아오던 그날이 생각났다. 피터가 빨간 장미 꽃다발을 들고 수아를 찾아와서 용서를 빌고 그리스 레스토랑에서 양고기 스테크(Lammsteak)와 감자튀김(Pommes Frites)을 먹고 사모스(Samos) 와인을 마셨다. 라디오에서는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uri)의 '사랑의 기쁨'이 분위기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차를 레스토랑 주차장에 세워놓고 시내에서 집으로 향하는 지름길인 공원을 거쳐서 집으로 가는 도중에 처음 만났던 공원 벤치에 앉아서 28년 전의 그 우연한 만남을 상상했었다.
두 사람은 그때 절대로 다시는 헤어지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점심식사 후 수아는 피곤하여 침대에 누었다.
침실 벽에 걸린 피터의 사진이 눈에 뜨인다. 수아가 코마로 누어 있을때 피터가 수아를 살리려고 그때 꿈속에서 무지개가 걸린 들판에서 들꽃을 한 아름 안기며 쥬리에게 가라고 하면서 자기는 사라져 버렸던 것만 같았다.


"여보! 살려줘서 고마워요."

수아가 잠에서 깨었을 때는 어느새 저녁 8시였다.
쥬리가 침실로 들어왔다.
"엄마! 많이 피곤한 것 같아서 그냥 두었어. "
쥬리가 수아와 같이 주방으로 가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했다.

 

2006년 8월,
어느덧 수아가 집에 돌아온 지 거의 2년이 되었다. 수아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쥬리는 소아과에 같이 근무하는 다니엘 뮬러(Daniel Müller)와 결혼을 하고 한창 사랑이 익어가고 있었다. 독일은 결혼 후에는 남편의 성을 따라야 했는데 1977년에 남편이 부인의 성을 따르거나 두 개의 성을 가질 수 있는 법이 개정되었다. 쥬리는 아빠와 다니엘의 두 성을 따라서 쥬리 피셔-뮬러(Juri Fischer-Müller)라고 혼인신고를 했다. 쥬리는 자기가 아빠의 대를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수아는 예쁜 손주라도 하나 있으면 했으나 쥬리와 다니엘은 조그만 소아과 병원(Praxis)을 차렸고 그곳에만 신경을 썼다.

 

수아는 고국에 계신 부모님을 방문하기로 했다. 수아가 병원에서 코마로 누어있을 때 부모님이 독일에 다녀가셨지만 수아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때였다. 늙으신 부모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수아는 독일을 떠나기 전에 피터의 묘소에 빨간 장미꽃을 꽂아놓고 한참을 피터와 대화를 했다.
"여보, 나 한국에 다녀올게요."

쥬리와 다니엘이 수아를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

 

이튿날 오전 11시에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80이 넘으신 부모님이 동생 성호와 수미와 공항에 나오셨다. 오랜만에 사랑하는 가족과의 만남이 감개무량했다.
고향집 뒤뜰의 감나무는 어느덧 고목이 되었고 장독간의 두 그루 무궁화는 여전히 피어있었다.
올케가 진수성찬을 준비했다.
성호는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고 전도사인 올케와 남매를 두었고 수미도 결혼하여 남매를 낳고 모두 행복해 보였다. 성호의 가족은 저녁식사 후 서울로 올라가고 수미는 하룻밤을 언니와 지냈다.

8월 20일은 수아의 큰어머니의 90세 생신이다. 미란다 호텔에서 친지들과 내빈들이 모였다.
수아는 오랜만에 친척들을 모두 만나게 되고 더구나 두 큰댁의 사촌 언니들을 만나서 무척 기뻤다. 친척들 외에는 마을의 어르신들도 많이 오셨다. 모두들 큰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고 식탁에 앉았다. 강호 오빠의 친구들도 몇 명 보였다. 그때 수아의 시선이 오른쪽 둥근 식탁에 앉은 김민수와 마주쳤다. 수아는 너무도 놀래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김민수가 이곳에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으나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생일잔치가 끝나고 성호가 부모님을 집으로 모셨다.

"수아야, 뭐 벌써 가려고 하니. 오랜만에 만났으니 맥주라도 한잔 하자." 강호 오빠의 말에 수아는 고개를 끄떡이며 이천 블랙 호프로 따라갔다. 두 사람은 생맥주를 마시며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호도 금년에 60이 되었고 이 도시에서 이름난 사업가였다. 강호는 민수가 지난해에 이혼을 하고 혼자 살고 있고 만날 때마다 수아의 소식을 물었다고 했다.
30분 후에 민수가 블랙호프로 왔다. 강호가 미리 계획을 했던 것 같았다.


"수아야 어떻게 지냈니? 너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민수가 옆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오빠도 늙지 않았네요."
그 말을 하면서 민수를 두 눈으로 똑똑히 쳐다보았다.
강호는 화장실에 간다고 나간 뒤에 돌아오지를 않았다.
"수아야, 내가 그때 너를 떠나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 후회 많이 했다."
"양가 부모님 께서 인숙이가 임신한 것을 알으신 후 결혼을 재촉하셔서 군대도 제대하기 전에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어."
"너 그때 내 원망 많이 했지?"
민수가 쉴 새 없이 말을 퍼부었다.
"아니야, 오빠가 당연한 일을 했지. 어떻게 임신을 한 여자를 버릴 수가 있어."
"모두가 지난 일인데 뭐."


수아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때 민수가 자기를 버리고 첫사랑에게 돌아갔을 때의 아픈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수아도 민수도 새벽이 오기까지 맥주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덧 35년 전의 일이다. 민수는 수아가 자기를 원망치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밤 두 시가 되어 민수가 수아를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거의 15분 동안 집을 향하여 차가 달리는 동안 수아도 민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아야 잘 자. 나는 오늘 강호네서 자고 내일 서울로 떠날거야."
"민수 오빠, 그럼 내일 잘 올라가."

수아의 어머니가 수아가 마루에 오르는 소리를 들으시고 잠이 깨셨다.
수아가 어머니께 강호와 민수와 만나서 맥주를 마셨다고 어머니께 말했다.
"수아야, 너 지금도 민수를 못 잊었지?"
어머니가 수아를 꼭 안으며 말씀을 하셨다.
"엄마는, 벌써 언제 일인데요."

수아의 어머니가 주방에서 감주를 떠 오셨다.
"엄마의 감주 맛이 최고예요."
수아는 맥주 석 잔을 마시고 목이 타던 참이었다.

그 이튿날, 강호에게서 낚시를 가자고 전화가 왔다.

수아는 등산복을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 큰댁으로 갔다. 강호와 민수가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성호 수리조합으로 낚시를 갔다.

 

두 남자들은 조그만 텐트를 치고 캠핑 책상과 의자도 놓았다. 강호는 음식도 푸짐하게 준비를 해왔다. 가을장마가 지난 후라서 저수지에 물이 넘쳤고 붕어와 메기 떼가 수없이 점프를 하며 날뛰고 있었다.
세 사람은 조그만 양은솥에 배추와 파와 매운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매운탕을 끓였다. 수아는 문득 옛날에 강호 오빠와 사촌 언니들과 이곳에서 매운탕을 끓여먹던 생각이 났다.
수아와 두 남자들은 매운탕을 먹고 소주도 마셨다. 수아는 하루 종일 너무나 즐거웠고 35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지가 않았다.

 

"수아야, 네 딸은 뭐하니?"
민수가 물었다.
"응, 소아과 의사야. 작년에 결혼해서 병원을 차렸어."
수아가 대답을 하면서 민수를 쳐다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리고 속으로 "어쩌면 쥬리가 아빠를 이렇게 꼭 닮았을까?" 했다.
"너 한국에서 살 생각은 없니?"
"아니, 난 하나뿐인 딸 쥬리와 떨어져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 수아는 민수가 묻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도 남았다.

 

민수도 60세가 되었고 이혼을 한 후 사업을 그만두고 은퇴를 하고 경기도 광주에 주말농장으로 이사를 하려던 참이라고 했다. 해가 기울어서야 민수는 서울로 가고 수아와 강호도 집으로 갔다.

주말에는 수미와 서울 투어버스 관광을 했다. 광화문 면세점 앞에서 투어 버스를 타고 한옥마을, 남산타워 등 여러 곳을 방문했다. 만원의 승차권으로 서울의 명소를 모두 방문할 수가 있었다. 35년 전과 지금의 서울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변했으며 아름다웠다.

 

수아는 남산의 팔각정에서 민수와 오색의 불빛에 아름다운 서울을 내려다보며 '서울의 찬가'를 노래 부르던 생각이 났고 하얀 크로바 꽃을 따서 머리에 꼽아주면서 사랑스러운 키스를 하던 민수의 얼굴도 떠올랐고 그리고 김민수의 여자가 되던 그 순간의 그림들이 수아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수아는 참으로 철없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생각하며 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수아는 쥬리를 선물한 민수가 고마웠다. 쥬리는 피터가 떠난 후 수아의 인생에 전부였다.

 

이젠 수아가 독일로 돌아갈 날도 머지않았다.
민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광주에서 인수받을 과수농장을 보고 있는 중이라고 수아가 한번 보았으면 했다. 수아는 버스를 타고 광주로 갔다. 민수가 곤지암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민수의 차를 타고 농장으로 갔다. 농장은 수아의 외가댁 초월면 동막골 근처 넓은 평야에 있었다.

수아는 어린 시절에 초등학교 때부터 여름방학 때면 혼자서 늘 초월면 동막골 외갓집을 방문했다. 곤지암 정류장에서 내려서 한 시간이 넘도록 걸어야만 했다. 큰 개울의 긴 목다리를 건너서 크고 무서운 진돗개가 있는 마을을 지나자면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양쪽에 미루나무가 줄지어있는 거리를 지나면 시냇물이 예쁜 돌 사이로 흘렀고 햇볕에 진주처럼 반사되어 빛나는 미루나무 잎사귀 사이에는 매미들이 합창을 하며 수아를 반겼다. 돌 사이에 흐르는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기도 하고 발을 담그고 땀에 젖은 얼굴을 닦기도 했다. 이 미루나무 길을 지나면 외갓집 앞에 있는 연자방앗간이 나온다. 연자방앗간이 보이면 이젠 다 왔다고 수아는 긴 한숨을 내쉬곤 했다. 이곳은 밤나무가 많아서 밤나무골이라고도 또 돌이 많아서 동막골이라고도 했다.


지금은 넓은 도로가 생겼고 많은 건물들이 세워져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은 여전히 있었다. 밤에는 외사촌 언니와 동생들과 등불을 들고 개울의 돌 틈에서 기어 나오는 가재를 잡기에 재미 있었다. 이곳은 잣나무, 다래, 머루 모든 것이 있어서 수아에게는 이곳이 어린시절의 낙원이었다. 지금은 외삼촌도 돌아가시고 외사촌들은 모두 서울로 가고 외숙모 혼자서 사신다고 했다.

 

"수아야 무슨 생각을 하니?"
민수의 물음에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니야 옛날 외갓집 생각을 했어. 이곳에서 가까운 곳이야."
"그랬구나."
민수의 과수원 한복판에는 아름다운 조그만 집 한 채와 채소밭이 있었다.

"수아야 맘에 드니?" 민수가 수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응 민수 오빠, 아름다운 에덴동산이야."
"수아야, 이곳에서 우리의 낙원을 꾸밀 수 있을까?"
"...."
수아가 말없이 빙그레 웃으며 민수를 바라보았다.
민수가 갑자기 수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수아야 생각해 봐. 나는 너를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어."


민수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으며 아내와 각자 다른 삶의 길을 걸었다고 했다. 민수는 수아를 독일로 보내고 첫사랑에게 돌아간 것을 곧 후회했고 수아를 그리워했으나  수아가 피터와 행복한 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강호에게서 종종 듣고 모든 것을 단념했었다고 했다.
민수는 "수아야 생각해 주길 바라."
"나도 60이고 너도 56세인데 이젠 자식들 생각하지 말고 우리 인생을 살아보자. 그리고 쥬리도 가끔 우리를 방문하면 되잖아."
하면서 수아에게 이것이 자기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수아는 너무 갑작스러운 민수의 질문에 빨리 답을 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수아는 민수를 사랑했던 35년 전의 그 사랑이 아직도 식지 않았고 가슴속에 불타고 있음을 느꼈다.


여름의 저녁노을이 과수원 한복판의 조그만 집을 빨갛게 물들였다.
수아는 민수와 이곳에서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서둘러서 결정을 짓고 싶지는 않았다.
곤지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민수가 수아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수아야 연락 줘. 내 핸드폰 번호 잊지 말고."
민수는 차를 돌려 서울로 향했다.

 

2006년 9월 15일, 금요일,
수아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성호와 수미와 인천 공항으로 갔다.
"살아생전에 또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건강 잘 챙기고 쥬리에게 안부 전해라."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셨다.
"엄마, 아버지 내년에 또 올게요." 수아도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성호와 수미와 인천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비행 대기실로 들어갔다.
한국과 독일은 여덟 시간 차이로 한국이 여덟 시간이 빠르다. 한국에서 오전 열한 시에 이륙하여 열두 시간 후 독일 시간으로 저녁 일곱 시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였다.
쥬리와 다니엘이 꽃다발을 들고 반갑게 맞았다.

그들은 집으로 향해 달리는 도중에 하이델베르크 시에 들러서 유명하다는 한국 레스토랑 황태자에서 저녁을 먹었다.


"엄마! 우리가 엄마에게 좋은 소식이 있어."
쥬리가 말을 꺼냈다.
"어머니, 우리 아기 가졌어요."
다니엘이 참지 못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쥬리야! 그게 사실이니. 쥬리야, 다니엘 고맙다."
수아는 쥬리와 다니엘에게 잘 생각했다고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을 금치 못했다.
집에 돌아온 후 그들은 샴펜을 마시며 쥬리의 임신과 수아의 귀가를 환영하는 파티를 했다.

이튿날 수아는 뒷 정원에 피어있는 장미를 꺾어 들고 피터의 묘소를 찾았다.
"여보! 고향에는 잘 다녀왔어요?" 하고 피터가 묻는 것만 같았다.
"네 잘 다녀왔어요."
"그리고 쥬리가 임신을 했어요."
수아는 한국에서 겪은 모든 일들을 피터에게 말했다.

 

2007년 6월에 쥬리가 아들을 출산했다.
이날은 수아에게 너무도 기쁜 날이었다. 수아가 쥬리를 낳았을 때는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컸었다.
아기의 이름은 쥴리안 피셔-뮬러(Julian Fischer-Müller)라고 지었다. 독일은 부모의 성을 모두 지닐 수가 있는 법이 1977년에 개정되어서 쥴리안이 피터의 성을 가질 수가 있었다.

한국에서 민수가 여러 번 전화를 했다. 민수는 과수원으로 이사를 해서 집을 꾸미는 중이라고 수아가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수아는 자기가 있을 곳은 쥬리와 쥴리안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수아는 36년 전의 첫사랑은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기로 했다. 가만히 생각하면 수아는 지금의 민수를 사랑한다기보다는 옛 추억 속의 민수를 사랑하고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수아는 민수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수아는 서재실 책상 서랍에서 3년 전에 쓴 유서를 꺼내서 다시 한번 읽었다. 그리고 쥬리에게 민수가 쥬리의 생부라고 고백을 한 그 유서를 찢어버렸다. 쥬리는 민수의 딸이 아니었고 피터의 유일한 딸이라고 생각했다.

 

수아는 쥴리안의 유모차를 끌고 자주 피터와 처음 만났던 공원을 산책했다. 피터와 자주 앉았던 벤치는 여전히 놓여있었다. 피터는 먼 곳에 있어도 영혼은 늘 수아의 곁에 존재했다. 수아는 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정장을 하고 서류가방을 든 피터를 만났고 때로는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는 피터를 보았다. 수아는 아무 말 없이 피터의 곁에 앉아서 늘 아름다운 대화를 했고 그때마다 행복했다.
피터는 수아에게 사랑하는 남편으로서 영원히 수아의 가슴속 깊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도 "나 여기 당신곁에 있어요." 하는 피터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그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수아를 행복하게 한다.
"네, 저도 알아요. 당신이 늘 내 곁에 있다는 것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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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해산하는 꽈리 

 

                                민병재

 

뜨거운 태양볕에도 끄떡없이 

연두색 둥지에 들어앉아

호롱불 켜고 외롭게 익어가는 꽈리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번개 치는 한여름에도 

굴하지 않고 고독하게 이겨내는 

초록색 꽈리 

 

탁발나온 벌나비 노크에도 

대궁을 열어주지 않고 

초연히 가을을 기다리며 익어가네 

 

가을이 오면 가을빛 채질하여

온 집안 주홍색 칠을 하고 

농익어서 터질듯한 뱃속에는 

태胎 이을 씨앗을 잉태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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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민병재

 

아호 : 수아粹娥

시인, 수필가, 소설가 

경기도 이천시 출생 

파독 간호사

Paracelsus Naturheilpraktiker Schule Karlsruhe Germany

(자연 의학 전공) 

Klinikum Karlsruhe Germany

(칼스루에 시립병원 40년 근무) 

Karlsruhe Germany 

재독 칼스루에 시 한인회 회장 역임 

Karlsruhe Germany 

칼수루에 시 한인회 자문위원 

재독 한국 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사)샘터문학 자문위원

(사)샘터문인협회 자문위원

 

<수상>

문예사조 시 등단 

문예사조 수필 등단 

문예사조 소설 등단 

 

<저서/시집>

라인강의 하늘을 나는 새야

(한글어판/독일어판)

 

<공저>

컨버전스 시집 외 다수

<샘문시선 8001호>

 

▲     ©김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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